오늘 밤도 귀신이 웁니다.
늑대인지 이리인지, 들짐승도 웁니다. 밤새 울 겁니다. 이 소리는 뭐지? 중간중간, 덩덩, 범종 소리가 섞입니다. 북한 사람들한테 장난질 당하는 기분입니다.
몇 개월 전에, 저들이 대남 소음방송을 시작할 때는, 자기네 군인과 주민이 대북방송을 듣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였을 겁니다. 이제는 남쪽 사람들을 자극하는 게 주된 목적이 된 것 같습니다.
사이렌소리, 비명소리, 울음소리, 쇠 긁는 소리…. 듣기 괴로운 소음을 잘도 찾아내서 다양하게 섞어 보내고 있습니다. 과거에 내보냈던 대남방송(노래와 말)보다 ‘효과’가 더 크다는 걸 발견한 모양입니다.
제가 사는 곳은 강화읍 관청리 지역입니다. 북한에서 보내는 소음방송이 4㎞ 정도 바다를 건너고 들판을 지나고 북산까지 넘어서야 제 귀에 도착합니다. 창문 꼭꼭 닫고 커튼 치고 누우면 잘 안 들립니다.
그런데 송해면과 양사면 해안가 주민은 사정이 다릅니다. 북한과 거리 2㎞ 안팎입니다. 연평도와 백령도보다 강화도가 북한과 더 가깝습니다. 뻥 뚫린 바다뿐, 가로막은 산도 없습니다. 북한 소음방송이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살려면 잠을 자야 합니다. 잠도 밥입니다. 하지만 송해·양사 주민들은 오늘도 귀 틀어막고 뒤척이며 긴 밤을 버팁니다. 그렇게 몸도 마음도 피폐해져갑니다. 아이들이 특히 걱정입니다. 해안경계근무 서는 국군들이 걱정입니다. 줄줄이 사산한다는 가축들도 걱정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고맙게도 여러 신문·방송에서 대남방송 문제를 연이어 다루고 있습니다. 국회의원들과 인천시장도 몇 차례 강화도에 와서 주민들을 위안하고 대책 마련을 말했습니다.
선출된 지 얼마 안 된 강화군수는 발 빠르게 행정명령을 내려 대북전단 살포자의 출입과 살포 행위를 막았습니다. 최근 인천시는 송해면 당산리 주택부터 방음창을 설치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해당 주민들을 대상으로 정신상담과 치료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다행입니다.
소음방송만큼이나 주민들을 힘들게 하는 게 있습니다. 정부의 무관심입니다. 정말 무관심한 것인지, 의도적으로 모르는 척하는 것인지, 아무튼 정부는 말이 없습니다. 주민이 국회에 가서 무릎 꿇고 살려달라 눈물로 호소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소음방송 피해 실태를 보도한 어느 신문 기사에 ‘2찍들의 자업자득’이라며 강화 사람들을 조롱하는 댓글이 여럿 달렸습니다. 여기서 무시당하고 저기서 놀림당하는 강화 사람들은 그래서 외롭습니다. 다 같은 대한민국 국민인데 말입니다.
다시 생각해봅니다. 방음창 설치하고, 정신건강 관리해주고, 가축용 스트레스 해소제를 지급하는 것이 근본 대책인가?
아닙니다. 소음방송을 그치게 하는 게 우선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북으로 보내는 대북방송부터 중단해보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정부만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귀신 잡는 정부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