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아내와 분식집에 가서 떡볶이와 김밥을 먹었다. 모처럼 학창 시절에 즐겨 먹던 정겨운 음식들을 마주하자 옛 감성이 새록새록 되살아났다. 그러다 메뉴판에 적힌 ‘마요 덮밥’을 보는 순간, 내 기억은 순식간에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갔다.
충북 청주에서 대학을 다닌 나는 학교 앞에서 하숙을 했다. 충청도의 한 시골에서 농사를 짓다가 댐 건설로 마을이 물에 잠기는 바람에 하숙집을 하게 된 주인아주머니에게 나와 선배 한 명이 첫 하숙생이었다.
대학생들의 음식 취향을 아직 파악하지 못하셔서인지 안타깝게도 하숙집 음식은 내 입맛에 전혀 맞지 않았다. 콩잎장아찌처럼 낯선 반찬이 자주 올라왔고, 조미료를 일절 넣지 않은 토속 음식들이 너무 심심했다.
돌이켜보면 아주머니는 인생의 힘든 시기를 열심히 극복해 나가는 중이었을 텐데 철없는 우린 그저 반찬 투정뿐이었다. 어느 날엔가 선배와 아침 밥상을 타박하며 했던 얘기가 떠오른다. “차라리 마가린이라도 사서 비벼 먹을까?”
새벽부터 정성껏 만든 반찬들을 무시하듯 낄낄대며 농담을 주고받은 그날 저녁, 밥상 앞에 앉은 우리에게 아주머니가 무언가를 내놓았다. 가만 보니 마요네즈였다.
순간, 아주머니의 일과가 직접 본 것처럼 머릿속에 그려졌다. 아침에 우리의 대화를 듣고 슈퍼에 갔을 아주머니는 ‘마가린’이란 이름이 정확히 기억나지 않았을 것이다. “마, 마…”하고 얼버무리다가 슈퍼 아주머니가 건넨 마요네즈를 들고 왔을 아주머니를 떠올리자 마음이 찡했다.
차마 그게 아니란 말을 하지 못하고 나는 마요네즈를 듬뿍 넣고 밥을 비볐다. 한 숟가락 넘길 때마다 느끼해서 속이 울렁거렸지만 “맛있쥬?”라는 아주머니의 물음에 “예, 아주 맛있어요”라고 답하며 한 그릇을 다 비웠다.
요즘 시대에는 마요네즈에 참치나 햄을 버무려 어엿한 음식으로 즐기는 마요 덮밥. 다음번에는 40년 전 하숙집 아주머니의 정을 되새기며 마요 덮밥을 먹어봐야겠다.
《샘터》 2024년 1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