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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常

《채식주의자》를 만났다

 

‘한강’이라는 이름을 한번 듣고 단박에 기억했다.

몇 해 전, 무슨 유명한 상을 받았다고 뉴스에 나온 때였다.

韓江! 간결하고 힘이 있다.

그런데 나는 그를 모른다. 아버지 한승원을 기억할 뿐이다.

 

젊어서는 왕성하게 다양한 분야 책을 읽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역사책만

주로 파게 되면서 소설이 멀어졌다. 하여, 그의 작품에 눈길도 주지 않았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났다.

무려 노벨문학상 아닌가.

아무런 인연도 없는 그의 수상에, 나는 감격하였다.

혼자서 손바닥을 쳐댔다.

 

번역된 노벨문학상 수상작이 아니라, 애초 우리말로 쓴 수상작이다.

이건 무조건 봐야지.

읽고 있던 이규보를 내려놓고 《채식주의자》를 집어 들었다.

읽었다.

뿌듯하다. 이 또한 역사적인 사건 아닌가.

 

《채식주의자》는 〈채식주의자〉, 〈몽고반점〉, 〈나무 불꽃〉 이렇게 세 편의 작품을

한데 묶은 것이다. 1+1+1=1. 세 편 이야기가 하나로 이어지는 장편이다.

잉크를 쿡쿡 찍어 날카로운 펜으로 쓴 글씨 같은 문장이다.

색깔은 회색. 어둡다.

세상을 살아보지 않은, 다만 그저 세상을 견뎌내고 있을 뿐인, 주인공들의 고단함이

그려진다. 작가는 스스로 ‘고통 3부작’이라고 칭했다.

 

궁합은 부부에게만 유의미한 것이 아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물건, 사람과 작품 사이에서도 여전히 유의미하다고 생각한다.

아쉽게도 나와 《채식주의자》는 궁합이 잘 맞지 않았다.

 

독서 중 ‘노벨문학상 수상작이지.’ 하는 생각이 불쑥불쑥 일어나 몰입에 조금 방해가 됐다.

만약에 내가 이 책을 노벨문학상 수상 이전에 읽었다면, 느낌이 훨씬 더 좋았을 것이다.

순수하게 읽는 재미를 맛보았을 것이다. 행간까지 꽤 읽어냈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럼에도 나는, 이 책을 읽어서 기쁘다. 한강, 그의 현재와 미래를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