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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史

광해군 폐위되던 날

 

《속잡록》에 명나라 장수 조도사(趙都司)가 한양에 와서 지은 시가 나온다. 《대동야승》과 《연려실기술》에 실려 있다. 광해군 말년인 1622년(광해군 14) 2월 3일에 지은 것이라고 한다. 조도사는 실록에 나오는 조유격인 것 같다. 유격(遊擊, 관직명) 조우(趙佑)이다. 다음은 조도사가 지은 시이다.

 

맑은 향 맛난 술은 천 사람의 피요 / 淸香旨酒千人血

가늘게 썬 좋은 안주는 만백성의 고혈일세 / 細切珍羞萬姓膏

촛불 눈물 떨어질 때 사람 눈물 떨어지고 / 燭淚落時人淚落

노랫소리 높은 곳에 원성도 드높구나 / 歌聲高處怨聲高

 

《속잡록》은 이 시를 “광해군 시대에 정사가 어지럽고 백성이 곤궁함을 지적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런데 어디 광해군 시대뿐이랴. 어디 조선시대뿐이랴.

가만,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금준미주 천인혈”이요…, 춘향전에서 어사 이몽룡이 변사또에게 써 준 시다. 이몽룡의 시는 조도사가 지은 시의 리메이크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몽룡이 시를 쓰자 변사또가 파직됐고, 조도사가 시를 짓자 광해군이 폐위됐다.

1623년(광해군 15) 3월 12일. 광해군이 결국 왕위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창덕궁이다. 창덕궁이 싫어서 몇 년을 경운궁으로 나가 견디기도 했던 광해군, 어쩔 수 없이 다시 창덕궁으로 들어가 재위하다가 폐위당한 것이다.

이날 뒤늦게 반정 정황을 인지한 광해군은 궁궐 호위와 조사를 지시한다. 유희분과 박승종이 거듭 말해서 그렇게 한 것이다. 그러나 허무하게 궁궐 문이 열렸다. 궁성 수비 책임자인 훈련대장 이흥립이 문 열고 나가 반정군에게 “어서 오세요.” 한 것이다. 이흥립은 이미 반정군에 가담한 상태였다.

반정군이 닥치기 몇 시간 전에 이이반이 급히 반정 계획을 알려왔다. 그때 광해군은 하필 술판을 벌이고 있었다. 반정 음모를 듣고도 바로 조처를 하지 않고 심드렁했다. ‘설마’ 했던 것 같다. 이렇게 광해의 시간이 가고 인조의 시간이 오고 있었다.

이이반의 고변을 들은 영의정 박승종은 조금 달랐다. 재빨리 이흥립을 불러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대가 김류, 이귀와 함께 모반하였는가?” 이흥립은 박승종과 사돈 관계이다. 박승종 빽으로 훈련대장이 된 사람이다.

그 이흥립이 대답했다. “제가 어찌 공을 배반하겠습니까?” 박승종은 믿고 이흥립을 풀어주었다. 풀려난 이흥립이 궐문 활짝 열고 반정군을 맞았다. 반정군이 들이닥치자 신하들은 도망갔다.

즉위 이래 광해군은 수없이 옥사를 치렀다. 사실인지, 아닌지 모를 역모 사건을 자주 겪어왔다. 그래서 오히려 역모에 대해 좀 둔감해졌던 것 같다. ‘이번에도 아니겠지.’ 그랬던 모양이다.

 

해마다 옥사가 일어나 조금이라도 의심스러운 행적이 드러날 경우 모두 잡아다 반역죄로 얽어 넣었다. 역적을 치죄한 지 10년에 죄수들이 옥에 꽉 찼고 심지어 일시에 발생한 옥사가 6, 7건이 있기까지 하였다. (광해군)도 말년에는 옥사가 대부분 사실이 아닌 것을 알고 역적의 옥사에 대해서 오히려 예사롭게 여겼고 어느 것인들 천운이 아니겠는가.

 

인조반정 세력은 광해군이 역모 기미를 보고받고도 제대로 대처하지 않을 걸 천운이라고 여겼다. “늑대가 나타났어요.” 양치기 소년이 떠오른다.

광해군, 자리 지키고 있다가 처연하게 반정군을 맞는 모습을 그려본다. 그랬다면 꽤 괜찮은 그림이 될 것이다. 하지만, 달아났다. 후원 북쪽 담장을 넘어 도망갔다. 내시에게 업혀 의관 안국신네 집으로 갔다. 도대체 누가 반정을 일으킨 건지 궁금했다. 묻는다. “혹시 이이첨이 한 짓이 아니던가.” 이이첨 이름이 여기서도 나오는구나.

광해군이 이이첨을 의심하게 된 이유를 사관이 설명해 놓았다.

 

왕이 이때 임취정 등을 신임하여 이첨의 권세를 억제하려고 했었는데 유희분이 은밀히 왕에게 아뢰기를 이첨의 세력이 너무도 높으니 그가 꺾임을 받지 않고 변란을 일으킬 계략을 가질 듯합니다.”라고 했기 때문에 왕이 의심했던 것이다.

 

다음날 광해군은 궁궐로 불려왔다. 사실상 체포되어 끌려온 광해군, 이런 말을 한다. “혼매한 임금을 폐하고 현명한 사람을 세우는 것은 옛날에도 있었던 일이다.” 여기까지는 좋다. 그런데 이어지는 말은 예상외였다. “어찌하여 나인·내시·급사들을 보내주지 아니하여 나를 대우하는 데 있어 이처럼 박하게 하는 것인가.”

 

예조판서 임취정이 아뢰기를, “구주(舊主)를 폐하여 군()으로 봉하는 것이 오늘날의 가장 큰 절목입니다. 속히 의논하여 조처하소서.”

 

정해진 수순이다. 광해군은 폐위되어 ‘군(君)’이 되었다. 왕자 수준의 대우를 의미하는 게 아니다. 여기서 ‘군’은 폐위된 왕을 낮추어 부르는 호칭이다. 그런데 광해군을 폐위하라고 인조에게 권한 게 누구? 임취정이다. 광해군이 신임해서 예조판서로 임명했던 그 임취정이다.

 

《연산 광해 강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