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볼 생각이었다.
어둡고 음습한 분위기, 공포물, 이런 부류의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TV에서 공짜로 틀어주는 것도 안 보는데
내 돈 들여, 내 시간 들여 극장까지 가서 볼 일이 없다.
최민식, 유해진, 이도현이 끌리기는 했다.
김고은은 끌리지 않았다. 나는 그의 연기를 반신반의했다.
그런데 봤다. 파묘.
신문마다, 인터넷마다 연일 파묘를 말하니,
슬금슬금 관심이 일었다.
꼬박꼬박 오컬트 영화라고들 하는데 뜻도 몰랐다.
찾아보니 오컬트(occult)는
“과학적으로 해명할 수 없는 신비적ㆍ초자연적 현상. 또는 그런 현상을 일으키는 기술”이라는 뜻이었다. ‘비과학’이 아니고 ‘초과학’이다.
900만을 찍었을 때, 나는 강화 작은영화관에 앉아 있었다.
이제 천만 영화가 된 파묘, 아주 볼만했다.
뭐, 무섭지도 않았다. 재밌었다.
특히 무당 김고은이 펼치는 굿판은 소름이 돋았다.
김고은, 미안하다. 이제 반신반의하지 않는다. 믿는다.
흥행 요인 가운데 하나가, 뭐랄까
항일코드라고 할까, 극일코드라고 할까
그런 걸 사전에 홍보하지 않은 점이라고 생각한다.
영화를 보면서 막판에 가서야 ‘저런 메시지였어?’
놀라게 만드는 기술이 돋보였다.
어느 영화감독이 파묘를 ‘좌파’들이나 보는 영화로 규정하면서
자진해서 좌파가 된 이들도 많았을 것이다.
‘항일’을 ‘좌파’로 간주하는 현 세태에 대한 반발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조금은 운도 따라서 천만 영화가 된 것이다.
사실, 나는 이 영화가 아주 잘 만든 작품이기는 하나
천만 영화로서는 조금 부족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한다.
특히 일본 장군 귀신의 실제 형상을 보여준 걸
개인적으로 아쉽게 생각한다.
보여주지 않으면서 좀 더 신비롭게 고급지게 엮었으면
더 설득력이 있었을 것이다.
있을 수 있는 이야기라고 느껴지는 개연성이 쭉 유지되다가
장군 귀신 등장하는 순간, 그게 깨지고 말았다. 내가 그랬다는 얘기다.
이 영화가 우리 사회의 무속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확대할 것 같다.
무속은 미신인가, 종교인가.
저마다 생각이 다르겠지만, 나는 무속도 산 자를 위안하는
엄연한 종교라고 여긴다.
다만, 진짜 무당을 만나기 어려운 한계는 있다.
진짜 무당은 인간에게 위안을 주고, 사이비 무당은 허망을 준다.
최근에 굿은 민속예술로도 각광받고 있다.
좋은 일이다.
다만, 무속의 본질은 예술 이전에 종교라는 점을 말하고 싶다.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쓰는 ‘미신’이라는 단어
제대로 쓰고 있는 것인지도 한 번쯤 생각해볼 필요가 있겠다.
국어사전은 미신(迷信)을 “비과학적이고 비합리적으로 여겨지는 믿음. 또는 그런 믿음을 가지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천주교·기독교·불교 등이 종교이고, 무속은 미신이라고 규정할 수 있는 것인가?
새삼, 미신이란 무엇인가?
강화에 진짜 무당이 계셨다.
김금화.
“안녕하세요.” 인사 한번 올리지도 못한 게 아쉽다.
그를 다룬 기사가 오늘 신문에 실렸다.
생전에 김금화는 "굿은 잔치"라고 했다고 한다.
그렇다. 굿은 잔치여야 한다. '저주의 굿판'은 진짜 굿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기사를 아래에 링크한다.
제주·광주·삼풍…진혼굿으로 영혼 달래던 ‘국민 무당’ 있었다
굿을 본 적이 있다. 어린 시절 시골에 갔다가 굿판을 봤다. 친가 쪽 시골인지 외가 쪽 시골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하얀 옷을 입은 젊은 여자가 칼을 들고 돼지머리 앞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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