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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常

친구와 칼국수를

친구와 점심을 먹기로 한 날이었다.

평소에는 막히지 않는 길인데 어디 교통사고라도 났는지, 차선을 막고 공사를 하는지, 시간은 가는데 도로가 꽉 막혀 차가 못 가고 있었다. ‘빨리 가야 하는데….’ 마음이 조급해져 결국 친구에게 10분쯤 늦을 것 같다고 전화했다.

 

겨우 식당에 도착했다. 친구는 칼국수 두 그릇을 자기 앞에 나란히 놓고 먹으며 조금만 기다리라고 했다. 금세 칼국수 한 그릇이 새로 나왔다.

 

알고 보니 친구는 칼국수 두 그릇을 주문하면서 약속 시간에 딱 맞춰서 달라고 부탁했다. 내가 배고플 것을 염려해 도착하자마자 바로 먹을 수 있게 한 배려였다. 음식은 제시간에 나왔지만 내가 늦는다고 하니 하는 수 없이 한 그릇을 추가로 시킨 거였다.

 

“조금 기다리면 되는데 뭐 하러 한 그릇 더 시켰어?”

“국수 불으면 맛없어.”

 

고작 10분 정도인데 불어야 얼마나 붇는다고….

국물은 한술도 뜨지 않았는데 가슴이 뜨거워졌다. 고맙다는 말 대신 “난 불은 게 더 좋아.”라고 퉁명스럽게 대꾸했지만, 나를 향한 친구의 마음 씀씀이에 그날의 식사는 각별한 기억으로 남았다.

 

며칠 전, 한 단체 대화방에 올라온 글을 읽다가 ‘친구(親舊)’라는 글자에 시선이 멈췄다. ‘친구’가 ‘친할 친(親)’에 ‘오래될 구(舊)’ 자를 붙인 단어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가깝기만 한 게 아니라 오래오래 친해야 비로소 친구였다. 그러니 겉절이보다는 묵은지가 진정한 친구의 맛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오랜만에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말해야겠다.

“어이, 칼국수 한 그릇 먹을래?”

 

 《좋은생각》 2024년 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