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자호란 때 강화도는 허망하게 무너졌다. 청군에 맞서 전투를 이끌어야 할 책임자, 김경징과 장신은 지 혼자 살겠다고 도망쳤다. 그럼에도 황선신·구원일·강흥업은 죽음으로 청군에 맞섰다. 이들을 기리는 비가 삼충사적비이다.
강화전쟁박물관 마당에 삼충사적비(三忠事蹟碑, 1733)가 있다. 비문은 이렇게 시작된다. “오호라. 이 갑곶나루터 진해루 아래는 곧 삼충신이 죽음을 보이고 돌아간 곳이다. 죽은 날은 실로 정축년(1627) 정월 22일이었다. 슬프도다. 삼충신은 강화부 사람이었다. 중군 황선신은 분개하여 싸우다가 전사하였고, 우부천총 구원일은 칼을 쥐고 물로 뛰어들어 전사하였으며, 좌부천총 강흥업은 중군과 함께 전사하였으니, 이른바 삼충이라 한다.…”
갑곶돈대 수많은 비석 가운데 강화의 정체성을 잘 보여주는 것이 이 비이다. 그런데 언제 누가 이런 짓을 한 것인가, 쇠못이 두 개나 박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