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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常

정은령의, 《당신이 잘 있으면, 나도 잘 있습니다》를 만나다

책을 살 때 서문이랑 목차 정도는 훑어보고 구입 여부를 결정한다. 그런데 가끔은 책 제목만 보고 혹해서 주문할 때가 있다. 아주 오래전 이소룡 세대에 바친다도 그랬다. 나에게 바친다는데, 사야지, 암만. 그랬는데, 기대했던 이소룡이, 없었다.

 

당신이 잘 있으면, 나도 잘 있습니다

제목에 절반 넘어가서, 무슨 책인가 확인하다가 뜻밖에, 반가운 이름 석 자를 만났다. 저자, 정은령.

 

몇 년에 한 번씩 신문을 바꿔가며 본다. 어떤 때는 하나, 어떤 때는 색깔 다른 신문 둘을 본다. 휴대폰으로 뉴스를 접하는 일상이지만, 그래도 소파에 누워 종이 신문 넘기는 맛을 나는 여전히 즐긴다. 근 이십 년 전, 그때 동아일보를 봤다.

맘에 쏙 드는 글을 만났다. 따듯했고 맑았다. 기자 이름이 정은령이었다. 그래서 정 기자 글을 챙겨 읽으며 이름을 기억했다. 그 후 언젠가 그녀는 동아일보를 떠났고, 나는 한동안 더 거기 머물다가 다른 신문으로 갈아탔다.

 

 

그렇게 정은령의 산문집, 당신이 잘 있으면, 나도 잘 있습니다를 읽었다.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저자이지만, 마치 대학 때 친구가 불쑥 보낸 두툼한 편지를 받아 읽는 마음이었다. 일부러 꾸미지 않았음에도 그의 글에서는, 뭐랄까, 기품의 냄새가 난다. 저자와 동시대를 살아온 덕에 공감의 폭도 컸다. ‘싸늘한 골몰처럼 다시 생각하게 하는 참신한 표현들도 좋았다.

 

40대에 저명한 직장 때려치우고 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저자, 그 목적이 단지 공부를 더 하고 싶어서였다. 학위 받고 돌아와서 무엇 무엇이 되겠다는 현실적 계산이나 목표 같은 것은 애당초 없었던 것 같다. 그냥 공부였다. 그 자체가 아주 멋지다.

 

행복한 독서였다.

위로받는 시간이었다.

당신이 잘 있으면, 나도 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