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드리언 루이스 인터뷰 기사 발췌
에이드리언 루이스(Adrian Lewis·70) 교수는 미국 캔자스대학 역사학과 교수로 저명한 군사전략 사상가다. 그는 저서 ‘미국 전쟁 문화:2차 대전부터 이라크전쟁까지 미군의 역사’(2017)에서 압도적 화력을 지닌 미국이 2차 대전 이후 베트남,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전쟁까지 왜 거의 모든 전쟁에서 패했느냐는 이유를 집중적으로 탐구한 전쟁 전문 학자다. |
“한국은 이런 다극주의 강대국에 둘러쌓여 있다. 미국이 한쪽 편을 들라고 강요하더라도 이를 맹목적으로 따를 필요는 없다. 기억할 것은 한국은 주권국이란 사실이다. 균형(balance)을 갖춘 입장을 취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지정학적 위치를 감안하면 쉽지 않은 결정이라는 것을 안다.”
“윤 대통령의 미 의회 연설을 잘 들었다. 지난 4월 워싱턴 선언에서도 알 수 있듯 윤석열 정부는 한-미 동맹에 국가안보의 많은 것을 의존하려는 듯 보인다. 그러나 자국의 안보를 동맹에 온전히 의존하는 것은 최근 세계 각국의 외교안보 전략 접근법은 아니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지켜준다고 약속하고선, 나중에 전황이 불리해지자 철수했다. 미래에 미군 철군과 같은 상황이 오는 것을 완전히 배제할 순 없다.
한-미 동맹이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내년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다시 대통령이 될지 모른다. (트럼프가 다시 대통령이 된다면) 예측이 불가능하고,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한국이 국가안보에서 독자적 투입(input) 없이 미국에 모든 걸 의존하는 것은 온당치도 않고, 가능하지도 않다. 미국을 온전히 믿지 마라. 심각한 실수(grave mistake)가 될 수도 있다. 미국과의 관계는 중요하다. 하지만 다른 문도 늘 열어놓아야 한다. 초강대국이 개별 국가의 안보를 대리해주는 시대는 1950년대가 마지막이었다. 자국의 안보를 다른 나라에 맡길 수는 없다.”
“미국은 전쟁하는 나라다. 지난 200년 역사에서 단 16년만 전쟁을 치르지 않았다. 지금도 전시 상황이다. 최대 무기 생산국이자, 최대 무기 수출국이다. 미국은 매년 국방예산에 8천억달러(2024 회계연도 8420억달러) 이상을 쓴다. 미국에게 전쟁은 비즈니스이기도 하다. 미국 외교·국방 기조인 ‘NSC-68’을 볼 때, 앞으로도 절대 ‘평화가 세상을 지배할 것’이라고 볼 수 없다.”
“현대전의 중요한 기점이 한국전쟁이다. 인위적 제한전의 시초였기 때문이다. 한국전 당시 중국의 개입으로, 미군은 역사상 최대의 후퇴를 했다. 그래서 당시 해리 트루먼 대통령은 핵무기를 사용하라는 압박을 강하게 받았다. 그러나 트루먼은 사용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인위적 제한전이 생겨난 순간이다.
지고 있고, 후퇴하고 있는 전쟁에서도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는 건 어려운 결정이다. 영화 <오펜하이머>에도 나오듯 트루먼은 2차대전에서 원자폭탄 투하를 결정했고, 그 때문에 전쟁을 조기에 끝냈다. 그러나 한국전쟁에선 원자폭탄을 투하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 결정에 대해 트루먼은 존경받아야 한다. 하지만 당시 그 결정으로 트루먼의 정치적 커리어는 끝났다.
당시 한국전에서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은 것은 기적이다. 한국전에서 사용하지 않았기에 베트남전에서도 그 기조가 유지될 수 있었다. 전쟁사에서 한국전이 베트남전보다 더 중요한 게 이 때문이다. 트루먼 이후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 때, 소련이 공격할 경우 미국의 대규모 핵 보복이 있을 것이라고 경고하는 ‘대량 보복전략’ 개념을 미국 안보 독트린의 핵심으로 내세웠지만,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는 기조는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한겨레신문〉, 2023.09.13., 권태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