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속의 병아리가 밖으로 나오기 위해 알을 톡톡 쪼기 시작한다. 이 소리를 들은 어미닭은 밖에서 부리로 알을 쪼아 준다. 둘의 줄탁(啐啄)이 이어지며 병아리는 마침내 알을 깨고 세상에 나온다. 중국 송나라 시대 불서(佛書)인 ‘벽암록’에 등장한 ‘줄탁동시’(啐啄同時)는 교육계에서 학생의 자기주도적인 노력과 교사의 조력이 상호작용해 학생이 성장한다는 철학을 담은 성어로 자리잡았다.(서울신문, 2023.08.16., 김소라 기자)
신문은 읽다가 후배교사 P가 떠올랐습니다.
교사가 되고도 한참 동안 저는 ‘줄탁동시’라는 말을 몰랐습니다. 그랬는데 언젠가 한문교사인 P에게 ‘줄탁동시’를 듣고 알게 되었습니다. 참 매력적인 표현이에요. 줄탁동시!
어느 해 스승의 날이었습니다.
수업 끝날 무렵, P선생이 자기 학급 문 앞에서 서성입니다. 종례하러 온 모양입니다. 그런데 꽃을 한가득 안고 있네요. 붉은빛 선명한 장미꽃 34송이!
뭐여? 물었더니, 몹시 쑥스러워하며 말하더군요.
스승의 날이 닥치고 보니, 문뜩 아이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더 들더랍니다. 좀 더 사랑해주고 좀 더 보살펴 줄 걸, 하는 아쉬움이 들더랍니다. 또 자신을 믿고 잘 따라주는 아이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더랍니다. 아이들이 불러 줄 스승의 은혜 노래 듣기가 송구해서 아침에 조회도 들어가지 못했답니다.
P선생의 얘기를 들으며 선배 교사인 저는 그저 부끄럽기만 했습니다. 남들은 아이들에게 꽃을 받는 날, 그이는 학급 아이들에게 꽃 한 송이씩 선물했습니다. 얘들아 고맙다, 사랑의 한마디 선물도 더해졌겠죠.
나이는 나보다 어리지만, ‘하는 짓’은 형님이었습니다. 사실, 저는 이 친구를 형처럼 의지하며 살았습니다. 아이들 대입 원서 쓰는 것부터 해서 이런 일 저런 일 참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지금 저는 학교 밖 세상으로 나왔지만, P선생은 변함없이 학교에서 줄탁동시하며 삽니다. 이제 며칠 뒤 9월 1일이면, P선생이 교장선생님이 됩니다. 진심으로 기쁩니다. 점점 어려워지는 교육 현장이지만, 우리 P선생이 학생과 교사가 함께 행복한 학교를 만드는 교장선생님이 되리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