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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常

반나절, 교동을 보았습니다

길었던 먹구름 가고 흰 구름이 왔습니다.

오랜만에 교동에 갔습니다.

 

철책 넘어 북한 땅에도 구름꽃이 피었습니다.

 

 

바다였던 교동 들판, 여전히 바다입니다.

벼들은 씩씩하게 잘 자라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저 붉은 나무재, 강화에선 경징이풀이라고 불렀답니다.

병자호란의 참상이 스몄습니다

김경징, 강화 지킬 책임자가 청군 닥쳐오자 어머니 버리고 아내도 버리고 홀로 달아났습니다. 

청군의 칼날에 강화 갯가는 피로 물들었습니다. 

 

 

대룡시장은 여전했습니다. 

평일, 무더위임에도 관광손님이 많았습니다. 

갈때마다 변합니다. 

먹을거리 파는 곳이 더 늘었습니다. 

조금 색다른 먹거리장터로 변모하는 중인 것 같습니다. 

교동주민에게 물건 파는 가게는 이제 몇 남지 않았습니다. 

커다란 철물점 있던 자리는 카페가 된지 오래입니다. 

 

 

우연히 저어새를 만나는 행운도 

 

 

난정평화교육원에 갔습니다.

평화의 꿈-교동

예술 작품 전시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88()까지

89()부터 22()까지는 교동 화해 평화센터에서

전시한다고 합니다.

 

김주호 선생님 작품

 

김주호, 허용철, 이시우 등 여러 선생님의 작품이 모였습니다.

오래도록 돌아보았습니다.

예술인의 능력 가운데 중요한 하나가 아이디어라는 생각이 다시 들었습니다.

 

가장 오래 머문 곳은 여기 부처님 아래 정한수

 

 

맞춤법 따지면 정화수가 바른 표기입니다만, 저는 여전히

정한수가 좋습니다.

아버지가 새벽마다 북산 약수터에서 물 받아오시고

어머니가 장독 위에 올리시며 가족의 무탈을 빌던 모습.

이제는 볼 수 없음에 .

오래도록 이 작품 곁을 맴돌았습니다.

 

집에 와서 후회했습니다. 

나도 엄마처럼 정한수 앞에서 손모아 빌고 올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