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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常

시집, 《무당벌레》와 《함바집 이야기》

세상에서 가장 짓기 어려운 글이 시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상대방이 시인이라고 하면

그이의 작품을 보기도 전에, 바로, 존경할 준비가 됩니다.

그동안 살아오며 시집을 꽤 읽었습니다.

후딱 한 권을 다 읽어버리지 않고

야금야금 아껴가며 읽습니다.

때로는 가슴이 뜨거워지고

때로는 가슴이 촉촉해졌습니다.

유명한 시인들의 시집을 주로 보았습니다.

강화에도 무슨, 무슨 문학회 활동을 하며

시를 쓰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고백하건대, 그런 분들의 시는 거의 읽지 않았습니다.

 

이제, 반성합니다.

적절한 비유는 아닌 것 같은데

내공 깊은 재야의 고수들이 분명히 있었습니다.

그분들 중에 구경분 시인과 임경자 시인을,

그이들의 시집으로 만났습니다.

조금 거만한 마음으로 시집을 열었고

아주 겸손한 마음 되어 마지막 장을 덮었습니다.

 

구경분의 무당벌레는 동시집입니다.

표현 방법이나 사용 어휘 등을 보면 동시집이 맞습니다만,

저는 어른을 위한 동시집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라는 동시를 볼까요.

 

어제는

호박꽃이 부른다고

호박꽃한테 간 너

 

오늘은

나팔꽃이 부른다고

나팔꽃한테 간 너

 

싫다

싫어!

아무 꽃한테 가는 너.

 

기분 좋은 미소가 피어납니다.

술래잡기라는 시는 이러합니다.

 

술래인데

열도 세기 전에

자꾸만 뒤돌아보아서

미안해

 

열까지 세면

네가 정말 없어질까 봐

나 혼자 마당에 남게 될까 봐

미안해, 다섯만 세고 돌아봐서

 

, 가슴이 따끔합니다.

시인이 초등학생 때였을까요.

몰래 좋아하던 남자아이를 추억하는 몇 편의 시는

읽는 이도 덩달아 그 옛날, 그때를 추억하게 합니다.

누군가의 얼굴을 그리게 합니다.

이런 시는 어떠신가요? ‘나는 못난이입니다.

 

내가 꺾어다

선생님 책상 위 꽃병에 꽂았던

그 커다란 다알리아꽃

 

내가 따다가

순덕이한테만 주었던

빠알간 꽈리 두 개

 

내가 잡아다

달자한테 준

방아깨비 한 마리

 

그거 모두 너를 주고 싶었는데

애들이 뭐랄까 봐

못 주었다, 동아야.

 

구경분의 무당벌레, 따뜻합니다. 눈이 맑아집니다.

박소연 작가의 삽화도 참 좋습니다.

 

 

임경자의 함바집 이야기

세대는 둘로 나눠집니다.

함바집을 아는 세대와 모르는 세대

이 시집은 아는 세대와 모르는 세대에게

각각 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것 같습니다.

머리와 가슴으로만 쓴 것 같은 시는 공허합니다.

한글로 쓴 시인데도 도무지 뭔 소리인지 모를 시는

좀 짜증이 납니다.

삶이, 단맛 쓴맛 먼 길 걸어온 삶의 경험이,

시에 어렵지 않게 녹아들어야

공감이 일어나고 감동이 솟습니다.

함바집 이야기에는 공감과 감동이 있습니다.

내 이야기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함바집 이야기 1’은 시인이 오늘도 한바탕 살아내는 시작을

알립니다.

온몸이 쑤시고 아파도 억지로 억지로 일어나야 할 새벽 네 시

기어이 일어납니다. 그때 남편의 잠꼬대가 들립니다.

경자야 미안하다 / 목구멍이 포도청이야.”

 

다음은 함바집 이야기 6’ 전문입니다

 

긴 장맛비입니다

 

일기예보를 믿는 사내들은

집으로 가고

믿지 않으려는 사내들이 모여

술을 먹습니다

 

알코올은

잠시

키 작은 사내들의 몸집을

부풀리지만

 

나는 압니다

 

그들의 얼굴에

기미 낀 아내의 얼굴과

메이커 신발을 사고 싶은

자식들의 얼굴이 겹쳐지는 순간

그들의 몸집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난다는 것을.

 

시인이 꾸려가는, ‘함바집으로 표현한 밥집

아마도 밥집 가까운 허름한 여관방에 장기 투숙하며

노동일하고 있었을 사내들

비가 오면 일이 멈추고 일당이 멈추고

변변한 안주 하나 시키지 않고 소주를 마시고 있을

그들을 시인은 따듯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품습니다.

저에게서도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납니다.

 

첫사랑엔 그 맥주를 다 비우고도

쉽사리 열리지 않는 고백들이 있으며

세상의 어떤 오프너로도 딸 수 없는

거품의 사연들이 있다”(‘고백’)는 시인은

누군가를 그리워할 수 있으니

이 가을이 다행이네”(‘비에 젖은 가을’) 무심한 듯

읊조립니다.

 

당신의 가족도 시 마당으로 불러냅니다.

정갈하고 또 맛깔집니다.

어머니, 아버지, 남편, 아들,

(시인)의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나의 이야기이고 우리들의 이야기입니다.

임경자의 함바집 이야기

때로는 아프고 때로는 설렙니다.

 

저는 주로 역사책을 읽습니다. 여전히 배우려고 읽습니다.

가끔 시집을 읽습니다. 시집은 그냥읽습니다.

좋은 시집을 읽다 보면, 너저분한 마음이 청소되는 것 같습니다.

임경자, 구경분의 시집은 더해서 배움도 있었습니다.

삶의 자세를 배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