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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史

불교와 강화도 사찰 이야기

오늘은 신라 원효대사(617~686)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원효가 불교 공부를 더 하려고 의상과 함께 당나라로 가는 길입니다. 밤이 되었고 주변에 집은 없고 그래서 토굴로 들어가 잡니다. 중간에 목이 말라 깬 원효, 마침 곁에 물이 담긴 바가지가 있기에 벌컥벌컥 마십니다. ~, 달다. 다시 잡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보니, 옆에 해골이 있는 겁니다. 으악!

간밤에 마신 물이 해골에 고인 썩은 물이었구나.’ 알게 된 순간, 바로 오바이트 신호가 왔습니다. 꺽꺽 토해내다가 문득 깨달았다고 해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모든 것이 다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 해골에 고인 물을 생수라고 여기고 마셨을 땐 시원하고 달았습니다. 배앓이도 하지 않고 잘 잤습니다. 그런데 해골바가지 물임을 알게 된 순간 몸이 따라 반응해서 토하고 말았습니다.

마음이 몸을 움직이고 세상을 움직이는 것이구나. 형식, 절차, 학식 이런 게 중요한 것이 아니구나. 이제 깨달았으니 중국에 갈 필요가 없다! 원효는 당나라 유학을 접고 경주로 돌아갑니다. 의상대사 홀로 당나라로 갔습니다.

원효는 백성 속으로 들어갑니다. 원효로 인해 불교가 널리 퍼지게 됩니다. 그래서 원효의 주요 업적으로 불교의 대중화를 꼽는 것입니다. 당시 불교는 불경 공부를 중시했던 모양입니다. 백성들은 한자를 모르니 불경을 읽을 수 없었고 그래서 진정한 신자가 되기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한마디로 불교가 지배층의 종교였던 것이지요.

원효와 백성들의 대화를 가정해봅니다.

부처 섬기시오.”

스님, 저희는 글을 모릅니다.”

괜찮소, 진실한 마음만 있으면 되오.”

저희가 어찌하면 됩니까?”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하면서 기도만 하면 되오.”

참 어려운 불교를 참 쉽게 만들어준 이가 원효인 것입니다. 삼국유사는 원효의 업적을 이렇게 평했습니다. “이 거리 저 마을에서 노래하고 춤추며 부처 말씀을 전하니, 가난하고 무지한 이들까지도 모두 부처를 알게 되고 나무아미타불을 칭하게 되었으니 원효의 가르침이 컸다.”

나무아미타불은 한자로 南無阿彌陀佛입니다. ‘남무(南無)’나무로 발음하는 것입니다. ‘남무(南無)’는 귀의합니다, 믿습니다, 섬깁니다, 이런 뜻이라고 해요. 그러니까 나무아미타불은 아미타불님, 당신을 믿습니다, 당신에게 귀의합니다, 이런 의미가 되는 것입니다.

나무관세음보살도 있잖아?” 그렇죠. 관세음보살님 당신을 믿습니다, 이런 의미가 되는 것이지요. ‘관세음보살을 줄여서 관음보살이라고도 합니다. 관음보살은 지금 이 세상을 보살펴주고 아미타불은 죽은 이후 세상을 돌봐주는 부처님입니다. 그래서 극락왕생은 아미타불에게 빌고 무병장수는 관음보살에게 비는 것이랍니다.

아미타불이나 관음보살이나 우리는 다 부처님으로 받아들입니다만, 이론상은 격이 다릅니다. 보살에서 한 단계 더 오르면 불(부처)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웅전(大雄殿)과 대웅보전(大雄寶殿)에 모시는 부처님이 다릅니다.

 

 

전등사 대웅보전

 

꼭 그런 것은 아닌데 대개 대웅보전은 불(), (), (). 세분 모두 부처님을 모십니다. 전등사 법당이 대웅보전인데요, 그 안에 삼존불은 석가모니불, 아미타불, 약사불입니다. 적석사는 대웅전입니다. 대웅전은 불() 한 분에 보살 두 분을 모십니다. 그래서 적석사 대웅전 삼존불은 석가모니불, 관음보살, 세지보살입니다. 대웅보전은 불··! 대웅전은 불·보살·보살!

어느 사찰에서든 모신 불상을 보고 부처인지 보살인지 바로 알 수 있을까요?

알 수 있습니다. 간단합니다. 부처는 머리 모양이 보글보글 파마머리 모양이고요, 보살은 화려한 모자 같은 걸 쓰고 있는 모습입니다. 삼존불이 모두 파파머리 모양이면 불··, 대웅보전입니다. 파마머리 한 분에 모자 쓴 두 분이면 불·보살·보살, 대웅전입니다. 다만, 여러 보살 가운데 지장보살은 스님처럼 머리를 깎은 모습입니다.

청련사는 대웅전, 대웅보전 다 아니고 그냥 한글로 큰법당이라는 현판을 달았습니다. 큰법당 안에 파마머리 한 분, 모자 쓴 두 분을 모셨어요. ·보살·보살, 그러면 대웅전 격이 되는 것인데, 사실은 가운데 계신 부처님이 석가모니가 아니고, 아미타불입니다.

아미타불을 주불로 모신 곳은 극락전, 무량수전, 미타전 등으로 불립니다. 그러니까 청련사 큰법당은 극락전 정도의 성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전엔 청련사에 1m 크기의 철불도 있었다고 해요. 철불이면 고려시대 불상일 가능성이 큽니다. 그런데 1961년에 청련사 주지가 이 철불을 누구에겐가 돈 받고 팔았습니다. 경향신문(1961.12.15.)부처를 판 스님이라는 제목으로 이 사건을 보도했습니다. 이런 노래가 있죠. 세상은 요지경, 요지경 속이다.

백련사 법당 이름은 極樂殿’(극락전)입니다. 현판을 보면 아미타불을 주불로 모셨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요, 백련사에도 아주 귀한 철불이 있었습니다. 철로 만들어 금을 입힌 철조아미타여래좌상입니다. 19894월에 보물로 지정됐는데 그해 12월에 도난당했습니다. 도둑이 들어 훔쳐 간 겁니다. 30여 년 지난 지금도 그 행방을 모릅니다.

마리산 산불이 정수사까지 삼키기 전에 진화돼서 그나마 다행입니다. 평소, 마리산 저 높은 데까지 함부로 깎아내고 밀어내고 지은 집들을 보면서 단군께 죄송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번 산불로 또 죄송했습니다.

 

전등사 대웅보전 삼존불
정수사 대웅보전 오존불

 

정수사 법당은 대웅보전입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이어야 하는데. ‘·보살·보살·보살·보살삼존불이 아니라 오존불입니다. 불상 앞에서 보아 왼쪽부터, 지장보살·보현보살·석가모니불·문수보살·관세음보살을 모셨습니다. 틀렸다고 할 수 없습니다. ‘개성이라고 해야겠네요. 어느 상황에서나 예외는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이제, 보문사는 어떠할지 알아보도록 합시다.

기독교, 천주교는 천당으로 가는 통로이고 불교는 깨달음을 목표로 하는 종교입니다. 누구나 깨달음을 얻으면 부처가 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신도들은 천당이나 깨달음보다도 현생의 복을 더 갈구하는 것 같습니다. 출산, 건강, 성공, 대학합격, 취업 등 현실적으로 더 절절한 바람을 품고 사원을 찾습니다. 세상에는 이상과 현실의 차이가 늘 존재하는 법인데 종교도 마찬가지인가 봅니다.

현재의 복을 소망하며 절에 가는 이들은 관음보살을 찾기 마련입니다. 전국적으로 유명한 3대 관음 성지가 있습니다. 강화 낙가산 보문사, 강원도 양양군 낙산사, 경상남도 남해군 보리암입니다.

인도 남쪽 해안 보타낙가산에 관세음보살이 계시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관세음보살을 모신 유명 사찰은 바닷가 가까이 있습니다. 보문사는 서해, 낙산사는 동해, 보리암은 남해입니다. 보문사를 품은 산 이름이 낙가산인데 관세음보살이 계시다는 인도의 산이 보타낙가산이라니까 거기서 이름을 따온 모양입니다.

그런데 대한민국 최고 관음성지라는 보문사 법당은 대웅전이 아니고 대웅보전도 아닙니다. 관음보살을 모셨을 테니 관음전인가? 아닙니다. 극락보전(極樂寶殿)입니다. 주불로 아미타불을 모신 겁니다. 물론 협시불로 관음보살도 모시기는 했지만, ‘관음성지극락보전은 왠지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보문사 마애관음보살상

 

그래도 괜찮습니다. 극락보전 뒷산 눈썹바위에 관음보살이 계십니다. 바로 보문사 마애관음보살상입니다. 앉은 모습인데도 높이가 9미터가 넘습니다. ‘마애(磨崖)’는 돌벽에 새겼다는 뜻입니다. 미술 용어로 비유하면 마애는 환조(丸彫)가 아니라 부조(浮彫)입니다. 돌계단 꽤 힘들게 올라야 함에도 많은 이가 마애관음보살상을 찾아 절을 올립니다.

절은 절할 사람만 가는 곳이 아닙니다. 관광도 가고 답사도 가고 홀로 마음 청소하러 가기도 합니다. 절을 보고자 하는 이가 있고 절 품은 숲을 보고자 하는 이가 있습니다. 가쁜 숨 몰아쉬며 보문사 눈썹바위에 오르는 이는 바다까지 보려는 것입니다. 관음보살과 함께 저 아래 바다를 내려다보는 겁니다. 누군가 당신 등을 도닥여줍니다. 바람인가, 관음보살인가. 문득 절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무관세음보살!

강화투데이36(2023.0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