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도가 승탑입니다
정수사 법당 동쪽 언덕에 강화군 향토유산으로 지정된 함허대사 부도가 있습니다. 근래에 나무 계단을 설치해서 발걸음하기가 한결 수월해졌습니다.
부도는 스님의 사리를 모신 조형물입니다. 탑이 부처님의 묘소라면, 부도는 스님의 묘소라 할 수 있습니다. 사각형 구조인 탑과 달리, 부도는 전체적으로 둥그스름한 모양입니다. 키도 탑보다 작은 편입니다.
웬만한 사찰마다 부도가 있어요. 강화 청련사에도, 백련사에도 있습니다. 탑이 절 마당 가운데 세워지지만, 부도는 후미진 장소에 모십니다. 눈에 잘 띄지 않는 고즈넉한 공간에 부도를 두는 것은 부처님에 대한 예를 갖추려는 의도일 것입니다.
‘부도’라는 명칭은 고대 인도어인 범어(梵語, 산스크리트어) ‘붓다(Buddha)’를 한자음으로 옮긴 것이라고 해요. ‘浮屠’ 또는 ‘浮圖’라고 쓰는데, 처음에는 부처를 가리키다 점차 승려의 사리탑을 의미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요즘은 ‘부도’보다는 승려[僧]의 탑(塔)이라는 의미가 직관적으로 드러나는 ‘승탑(僧塔)’이라는 명칭을 더 많이 씁니다.
키가 줄어든 이유

함허대사 승탑은 화려하고 세밀한 조각장식 없이 둥그스름한 덩어리감만 살렸습니다. 그래서 투박해 보이기도 합니다만, 그게 오히려 수행자의 소박한 삶을 온전히 대변해 주는 것 같아요.
안내판에 전체 높이가 164㎝라고 적혀 있습니다. 관련 책자나 인터넷 자료에도 그렇게 나옵니다. ‘이상하다, 아무리 봐도 그 정도는 안 되는 것 같은데….’
주차장으로 내려가 자동차에서 줄자를 꺼내 다시 올라왔습니다. 재봤습니다. 재는 위치에 따라 약간씩 차이가 납니다만, 대략 150㎝밖에 안 됩니다. 왜 다른 걸까?
일제강점기에 촬영된 사진과 비교해 보고 나서야 한 가지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일제 당시에는 승탑의 꼭대기 부분이 구슬 모양 장식 세 개를 크기순으로 쌓아놓은 것 같은 형태였습니다.
지금은 가장 위의 장식 하나가 유실되고 두 개만 남았습니다. 사라진 구슬 장식 하나만큼 승탑의 키가 줄어든 것입니다. 164㎝에서 150㎝로 줄어든 사연입니다.
현등사에도 함허대사 승탑이 있습니다
정수사에 승탑이 있다 보니, 함허대사가 이곳에서 입적한 것으로 오해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대사가 마지막 숨을 거둔 곳은 강화 정수사가 아니라 경북 문경 봉암사입니다. 대사와 인연 깊은 사찰들에 사리를 나눠 모셨기 때문에 봉암사에도 정수사에도 승탑이 서게 된 것입니다. 이밖에 황해도 평산군 연봉사와 경기도 가평군 현등사에도 대사의 승탑을 모셨습니다.
가평 현등사에 있는 승탑의 공식 명칭은 ‘현등사 함허당 득통탑 및 석등’(懸燈寺 涵虛堂 得通塔 및 石燈)입니다. 승탑에 ‘涵虛堂得通塔’(함허당 득통탑)이라고 새겨져 있어서 그대로 이름을 정한 것입니다. 이름을 보니 석등도 있다는 걸 알 수 있네요. 사실 정수사 승탑에도 남쪽으로 아담한 석등이 하나 있었습니다. 어느 때인가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득통? 함허당 득통?
함허대사(1376~1433)는 고려 말에 태어나 조선 초에 활동했던 고승입니다. 1376년(우왕 2)에 충북 충주에서 태어났습니다. 성균관에서 학문을 닦던 스물한 살에 출가합니다. 절친한 벗의 죽음을 통해 인생의 무상함을 깨닫고 단행한 출가였답니다. 이때가 1396년(태조 5)입니다.
출가 전 이름이 유수이(劉守伊)로 알려져 있습니다. 저도 그렇게 알고 있었습니다만, 아니었습니다. ‘수이’는 함허대사의 속명이 아니라, 출가하고 받은 첫 번째 법명입니다.
1414년(태종 14)에 황해도 연봉사에서 작은 방 하나를 얻어 함허당(涵虛堂)이라고 이름 붙이고, 3년간 수행했습니다. ‘함허당’은 방에 붙인 이름, 그러니까 당호이면서 또 호이기도 합니다.
1420년(세종 2) 가을에 함허대사가 강원도 오대산에 들었습니다. 꿈속에 어떤 신승(神僧)이 나타나 “그대의 이름은 기화(己和), 호는 득통(得通)이다.”라고 말해주었다고 합니다.
꿈에서 깨니 온몸의 기운이 맑고 상쾌한 것이 맑은 하늘 위에 오른 듯했다고 합니다. 이때부터 기화라는 법명과 득통이라는 호를 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함허대사를 ‘기화대사 함허당’, ‘함허 득통’, ‘함허당 득통’ 식으로 칭하는 것입니다.
산새 한 마리가 승탑 꼭대기에 살포시 내려앉았습니다. 어허, 무례한 녀석이네요. 하지만, 함허대사는 저 새가 고마울지도 모릅니다, 빙그레.
-〈강화역사심문〉제9호(2026.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