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안컵 축구대회 한·일전 응원 때 등장했던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가 여전히 뜨겁다. 플래카드를 떼어버린 축구협회의 처사에 뭘 그 정도 가지고 그랬나 싶다가도, 스포츠는 그냥 스포츠여야 한다는 FIFA적 관점도 공감하게 된다. 이기면 신나고 지면 속상하지만, 질 수도 있는 것이 스포츠다. 일본 응원단에서 '욱일승천기'를 흔들어댄 것, 우리 플래카드 내용을 문제 삼아 한국 국민의 '수준' 운운한 일본 각료의 발언에서는 화가 나기보다 왠지 그들의 열패감을 보는 듯해 측은하게 들린다.
그런데 이 사건을 보도하는 우리 신문, 방송들은 하나같이 '욱일승천기'라고 한다. 일본인들조차 줄여서 '욱일기'라고 부르는 것을 우리 언론은 왜 정성스럽게 꼬박꼬박 '욱일승천기'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욱일승천(旭日昇天)은 떠오르는 아침 해처럼 세력이 성대(盛大)해진다는 뜻이다. 일본은 한때 전쟁이라는 최악의 방법으로 욱일승천의 기세를 누린 적 있다. '욱일승천기'는 그 끔찍했던 일본 제국주의와 군국주의의 상징이다. 천황이라는 왕호가 참 부담스럽듯, 욱일승천기라는 이름도 부담스럽다. 지금 다시 그 깃발을 흔드는 것은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고 싶다는 속마음의 표현일 수 있다. 여러 방면에서 위축된 자국의 현실이 반영된 것이다.
이제 우리 언론도 '욱일승천기'를 대체할 가치 중립적인 이름을 찾아 써야 할 때가 됐다. 일각에서 '전범기'라고도 하지만, 이는 좀 자극적이라는 생각이다. 일본 제국주의의 깃발이라는 의미로 '일제기(日帝旗)'가 어떨까? 아니면 '일군기(日軍旗)'도 나쁘지 않다. 다시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로 돌아가자. 붉은악마의 충고는 따지고 보면 설득력이 있다. 이 말은 들어야 할 대상을 바꿔 봐도 여전히 유효하다. 바로 우리 자신에게.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조선일보〉, 2013.08.09.
욱일기와 제국군, 자위대 [유레카]
일본 메이지 정부가 1870년 육군 군기로 채택한 욱일기는 해를 상징하는 붉은 원에서 햇살 열여섯 줄기가 뻗어 나가는 모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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