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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常

추억의 맛은 힘이 세다

 

집사람이 저녁상에 모처럼 묵은 총각김치를 지져 올렸다. 뚝배기에서 김이 모락거린다. 척 보니 색이 탁한 것이 맛없어 보인다. 그렇게 보일 뿐이고 사실은 맛나다는 걸 나는 안다.

 

문뜩 한 친구가 생각났다.

고등학생 때, 선원면에 사는 친구가 강화읍에서 자취했다. 자취방에 자주 놀러 갔다. 어느 날 친구가 밥을 해줬다. 반찬은 딱 하나. 집에서 가져온 총각김치에 물 적당히 넣고 양은냄비에 끓였다. 아무것도 안 넣고 오직 물 약간. 멸치 한 마리도 들어가지 않았다.

오늘 저녁 우리집 찌개처럼 색깔이 거무튀튀했다. 별로 땡기지 않는 비주얼, 그래도 냄새는 구수했다. 먹기 시~!

의와,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국물이 끝내줬다. 지금껏 내가 먹어본 김치찌개 가운데 그때 친구가 해준 게 최고의 맛이었다.

 

역시 고등학교 때다. 하점면 사는 친구 집에 갔다. 식구들이 외출하고 친구 혼자 있었다. 점심으로 붕어매운탕을 끓여주겠다고 했다. “니가?” 넓은 부엌에서 매운탕을 준비하는 친구 모습을 반신반의하며 지켜봤다.

그런데 너무 설렁설렁 대충대충, 성의가 없는 거다. 밭에서 대파를 몇 개 뽑아와 다듬더니 손으로 뚝뚝 잘라 가마솥에 넣었다. 물에 씻지도 않고 흙 남은 그대로.

더럽게

나는 옆에서 투덜거리며 다되기를 기다렸다. 드디어 완성, 국수까지 넣어 제법 그럴듯했다. 맛은, 맛이 예술이었다. 이 나이 먹도록 생선 매운탕 많이 먹었어도 그때 친구가 끓여준 것보다 나은 매운탕을 만나지 못하였다.

 

정말로 내가 평생 먹어본 찌개 중에 친구가 끓여준 게 최고였을까. 친구가 해준 붕어매운탕이 최상의 맛이었을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일종의 왜곡된 기억일 수 있겠다. 하지만 나는 왜곡을 거부하고 싶지 않다. 추억의 맛이기 때문이리라.

 

그 오랜 세월, 이런저런 추억 함께 쌓으며 여전히 곁에 있어 주는, 든든한 두 친구에게, 고맙고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