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史

‘가꾸지’ 바닷길 역사산책⑤-초지진

초지진에 왔다. 무엇이 보이는가. 소나무! 언제 보아도 정말 멋지다. 저 소나무 없는 초지진은 상상할 수 없다. 연미정을 느티나무가 빛내주었듯 초지진은 저 소나무가 빛내준다. 부디 오래도록 건강하시길, 그 어떤 태풍에도 끄떡없으시길.

초지진은 1656(효종 7)에 설치됐다. 초지돈대, 장자평돈대, 섬암돈대를 거느렸다. 지금까지 이 글을 꼼꼼하게 읽어 온 분은 알아챘을 것이다. 그렇다. 초지진이 아니다. 여기는 초지진이 아니라 초지진에 소속됐던 여러 돈대 가운데 하나인 초지돈대이다. 갑곶돈대처럼 이름을 잘못 붙인 것이다.

 

 

초지진은 참 중요한 역사의 현장이다. 신미양요(1871) 때 미군이 상륙한 곳이다. 몇 년 뒤 운요호사건(1875)도 여기서 벌어진다. ‘운요호사건을 예전에는 한자 그대로 운양호사건(雲楊號事件)이라고 칭했었다. 이제 운요호사건의 배경과 경과를 살펴보자.

철종이 재위하던 1854(철종 5), 그때 일본이 미국에 의해 개항됐다. 당시 일본은 막부(바쿠후)라고 불리는 무인정권 시기였다. 우리나라 고려 때부터 조선시대까지 일본은 계속 막부 체제였다. 700년 동안 무인들이 통치한 나라가 일본이었다. 그 영향인지 한국인은 ()’라는 한자를 선비로 해석하고 일본인은 사무라이 즉 무사로 인식한다고 한다. 1867(고종 4), 일본에 쿠데타가 발생해서 막부가 무너진다. 새로 들어선 정부가 메이지 정부다. 오랜 세월 힘없던, 이름뿐이던 천황이 이제 실권을 잡게 되었다.

메이지 정부는 조선에 서계라고 부르는 외교문서를 보냈다. 조선은 접수를 거부했다. 보내고 거부하고 보내고 거부하고. 조선은 왜 서계를 받지 않았나. 받을 수 없었다. 일본이 서계에 자기네 임금이 황제임을 드러내는 용어를 썼기 때문이다.

당시 동양 국제 질서에서 황제는 중국의 임금뿐이다. 그동안 조선은 일본을 사실상 아래 나라로 인식하고 대우했었다. 그런데 서계를 접수하면, 일본 임금이 황제임을 인정하는 게 되고, 그러면 일본을 조선의 상국(上國)으로 받아들이는 꼴이 된다. 격식을 중요시하던 시대였다. 조선 처지에서 서계 접수는 불가였다.

그 무렵 통상수교거부정책(쇄국정책)을 펼치며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를 치러낸 대원군이, 조정에서 밀려났다. 이제 아버지 그늘에서 벗어난 고종의 친정이 시작됐다. 조정의 분위기가 바뀌고 있었다.

1875(고종 12), 일본 군함 운요호가 강화도 앞바다에 나타났다. 서계 접수 거부 문제를 따지러 온 것이다. 알려지기는 운요호가 중국으로 가는 길에 식수가 부족해서 물 구하러 강화도로 접근했던 것이라고 한다. 거짓말이다. 서양 나라들이 일본의 강화도 무단 침공을 비판할까 봐 일본이 꾸며낸 이야기이다. 처음부터 운요호의 목적지는 중국이 아니라 강화도였다.

821(양력: 920), 초지진 앞으로 운요호에 딸린 작은 배들이 오락가락했다. 무장한 일본군이 타고 있었다. 남의 나라 영토, 그것도 진입이 금지된 물목이다. 초지진에서 포격했다. 일본군이 반격했다. 그렇게 또 한 번 초지진은 작은 전쟁터가 되었다. 못 견딘 일본군이 퇴각했다.

822(양력: 921), 운요호가 직접 올라와 초지진에 포를 쏘아대며 상륙을 시도했다. 신미양요 때의 조선군이 아니었다. 도망가지 않고 맞섰다. 치열하게 싸웠다. 약 두 시간 동안 쌍방 포격전이 계속됐다. 운요호는 초지진 상륙을 포기하고 물러갔다. 그들은 초지진에 상륙하지 못했다.

823(양력: 922), 자존심 상한 일본군은 영종도에 상륙해서 죽이고, 불 지르고, 빼앗고, 그렇게 몹쓸 짓 다 하고 제 나라로 돌아갔다.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 가서 눈 흘긴다더니.

이상하게도, 운요호사건이 우리에게 부끄러운 사건인 것처럼 인식되고 있다. 그렇지 않다. 침략군을 당당하게 물리친, 오히려 자랑스러운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또 이상하게도 운요호사건의 결과가 조선의 패배인 듯 잘못 알려져 있다. 일본군이 초지진을 점령하고 무기를 탈취하고 조선군도 잡아갔다고 한다.

전투 결과 초지진은 파괴됐다. 운요호의 침략에 맞서 조선군도 대항했지만, 30여 명이 전사했고 화포·화승총 등을 빼앗겼다.”(국방일보, 2021.06.15.) 이런 부류의 오류 기사도 흔하게 발견된다. 상륙도 못 했는데 어떻게 화포와 화승총을 빼앗아 갔다는 말인가. 아마도 영종도와 강화 초지진을 혼동하고 글을 쓴 것 같다.

이제 돌아갈 시간. 초지진 안녕, 소나무여 안녕. 가꾸지 바다 따라서 온 길을 되돌아서 간다. 집으로 간다. 같은 길이지만, 올 때 본 길과 가면서 보는 길은 또 다르다. 라디오를 켠다. 노래가 나온다. 볼륨을 올린다.

 

가을잎 찬바람에

흩어져 날리면

캠퍼스 잔디 위에

또다시 황금 물결

잊을 수 없는 얼굴

얼굴 얼굴 얼굴들

루루루루 꽃이 지네

루루루루 가을이가네.

 

강화문화원, 江華文化16,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