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그림의 윤곽이 뚜렷해진다. 접경지역 주민들은 북한의 대남 소음방송으로 고통 겪는지 오래다. 그동안 각계에서 대북방송 중단을 그리도 간절하게 요청했건만, 정부는 계속 못 들은 척했다.
대북방송은 국가 안보가 아니라 ‘정권 안보’를 위한 술책이었다. 오물 풍선 날리는 북한 땅, 황해도 지역을 포격하라고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군에 지시했었다고 한다. 지시받은 합참의장이 거부했다고 한다.
북한을 타격하면, 그들도 대응사격을 하게 된다. 국지전이다. 이를 빌미로 비상사태를 선언해서 합법적인 양 계엄령을 선포하려던 속셈이었다. 북한의 포격으로 우리 장병과 주민이 얼마나 죽든 상관없이, 그저 정권만 지키면 된다는 무도한 발상이었다.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자기 자리 보전하려고 북한을 도발해서 어쩌면 전쟁이 될지도 모르는 국지전을 일으키려고까지 했다. 말 그대로 모골이 송연하다. 그동안 북한 대남방송을 멈추게 해달라고 호소하던 사람들, 분노보다 슬픈 허탈함에 젖었다.
나름 민주주의 시스템이 잘 갖추어진 대한민국에서 대통령 한 사람이 정치·경제·군사·외교를 이렇게나 엉망진창으로 만드는, 만들 수 있는 현실이 참담하다.
이런 대통령을 구하겠다고 국민의힘 사람들은 대통령 탄핵 투표장에서 집단으로 달아났다. 앞 못 보는 김예지 의원은 세상을 제대로 보고 숭고하게 결단했으나, 두 눈 멀쩡한 의원들은 제대로 보지 못했다. 국가와 국민보다 당의 이익을 우선했기 때문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다음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당선되고 싶은 개개인 욕망 때문일 것이다. 참으로 이기적이다.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이 다음 선거 때면, 국민이 다 잊는다는 식으로 말했다. 그때는 맞았는지 모르지만, 이번에는 틀렸다. 국민은 잊지 않는다. 어찌 잊을 수가 있는가.
그날, 국회 본회의장에서 사라진 105명의 국민의힘 의원들! 지역구 주민에게 물을 필요도 없다. 평생 함께하는 부인에게 물으면 된다. 탄핵 표결에 참여하는 게 좋을지, 아닐지. 아들딸의 의견도 들어보면 좋겠다. 가족의 답변은 거의 같을 것이다. 가족을 따르라. 그리하여 국회의원 이전에 가장의 품격을 보여달라.
부디 다음 탄핵 표결에 동참하여 소신껏 투표하기를 바란다. 양심의 가책으로 괴로운 분들은 양심대로 투표하면 된다. 그리하여 마음의 평화를 얻길, 역사의 길을 따르길, 간절히 바란다.
〈한겨레신문〉 2024.1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