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성단과 첨성대
마니산 참성단이 가끔은 첨성단인지, 참성단인지 헷갈릴 때가 있어요. 아마 경주 첨성대와 기억이 섞여서 그런 것 같습니다. 첨성대(瞻星臺)라는 한자는 ‘별을 보는 대’라는 뜻이에요. 이름 안에 천문대라는 의미가 담긴 셈입니다.
그런데요, 세종 임금이 백두산·한라산·마니산에 역관을 보내 북극성을 관측하게 했다는 기록이 조선시대 지리서인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보입니다. 역관이 참성단에서 별을 살폈을 것입니다. 단군의 제천단으로만 알려진 참성단이 천문대 역할도 했던 셈이죠. 그러니, 깜빡, 참성단을 첨성단으로 불러도 뭐, 틀렸다고는 할 수 없겠네요.
단군의 제천단
참성단의 본질적 의미라고 할까요, 역사 속의 참성단으로 가보겠습니다.
일단 이름부터 정리해봅니다. 의외로 한자 표기가 다양합니다. 그 가운데 제일 많이 쓰인 게, 塹城壇과 塹星壇입니다. 《고려사》 등에 ‘塹城壇’으로 나오지만, 《조선왕조실록》은 별 성(星)자를 써서 ‘塹星壇’으로 적었습니다. 지금 공식적으로는 塹星壇을 씁니다. 국가지정 문화유산 사적 참성단의 명칭은 ‘강화 참성단(江華 塹星壇)’입니다.
《고려사》는 마리산 꼭대기에 참성단이 있다고 하면서 “세상에 전하기를 단군이 하늘에 제사하던 제단이라 한다.”고 기록했습니다. 《세종실록지리지》 역시 비슷한 내용을 적었습니다.
참성단이 단군의 제천단으로 전한다는 얘기는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전국에 단군 관련 유적으로 말해지는 곳이 여럿이지만, 정통 역사서에 소개된 곳은 강화가 유일하기 때문이에요.
지금부터 760년 전쯤, 어느 날 깊은 밤, 참성단에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그들은 뭇별에 제사를 올렸습니다. 별에 대한 제사는 곧 하늘에 대한 제사입니다. 제천 행사입니다. 주관한 사람은 고려 원종입니다. 《고려사》(1264.06.07.)를 옮깁니다.
〈왕이〉 묘지사로 거처를 옮기고, 또 마리산 참성에서 친히 초재를 지냈다. 移御妙智寺, 又親醮于磨利山塹城.
고려 대몽항쟁기 그때, 마리산은 고가도라는 별개의 섬이었습니다. 원종이 화도면에 있던 묘지사를 거쳐 참성단에 올랐습니다. 배를 타고 건넜을 겁니다. 물론, 물이 빠졌을 때 그냥 걸어서 건너는 지형이었을 수도 있겠지요.
초재(醮齋)란 하늘의 별들에 제사하는 도교적 의례입니다. 조선시대에는 주로 초제(醮祭)로 불리게 됩니다. ‘제(祭)’는 유교적 제사를 의미해요. 초재를 초제로 호칭하게 된 것은 도교적 의례가 유교적 의례로 변화했음을 의미합니다.
원종이 참성단에 오른 이유
이제 원종이 참성단에서 초재를 올리게 된 상황을 알아보겠습니다.
1231년(고종 18), 몽골이 고려를 침략했습니다. 기나긴 전쟁의 시작입니다.
1232년(고종 19), 고려가 개경에서 강화로 천도하고 대몽항쟁을 공포합니다.
1259년(고종 46), 고려가 몽골에 항복하고 화의를 맺습니다.
1264년(원종 5), 원종이 참성단에서 초재를 올립니다.
1270년(원종 11), 고려가 강화에서 개경으로 환도합니다.
고려가 1259년(고종 46)에 일단 항복했습니다. 그러면 당연히 개경으로 도읍을 다시 옮겨야 합니다. 그러나 개경으로 가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강화에 조정이 있었습니다. 몽골이 개경으로 환도하라고 요구해도 못 들은 척했습니다.
이는 형식적인, 전략적인 항복일 뿐, 실제로 항복한 것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여전히 대몽항쟁을 지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시기에 원종이 참성단에 갔습니다. 몽골에 대한 항쟁을 계속한다는 의지를 품고 마니산을 올랐을 것이에요. 나라와 백성의 안전을 하늘에 빌었을 것입니다.
참성단은 고려 때까지 나라에서 하늘에 제사를 올리는 중요 제천단이었습니다. 매년 봄가을에 정기적인 초재를 올렸습니다. 하지만, 조선시대에 그 위상이 약화됩니다.
조선은 명나라를 섬기는, 성리학의 나라입니다. 성리학자이기도 한 조선의 신하들은 제후국인 조선이 명의 황제만 할 수 있는 하늘 제사 올리는 게 예법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유교 국가에서 도교 의례인 참성단 초재를 지낼 수 없다고 했습니다. 결국, 참성단 초재는 유교식 제사로 간소화되고 그러다가 폐지됩니다. 하지만, 조선에서도 마니산을, 참성단을, 여전히 신성시하였습니다.
〈江華역사沁문〉 창간호(2024.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