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년 8월 29일, 나라가 죽었다.
그날 일제는 칙령 제318호로 이렇게 선언했다.
“한국의 국호를 고쳐 지금부터 조선이라 칭한다.”
식민지 백성들은 ‘조선인’으로 불리게 되었다. 일본말로 ‘조센징’이다.
조선이라는 두 글자에 생채기가 났다.
‘조선’은 단군 고조선에서 시작됐다. 애초 고조선 국호는 조선이었다.
일연이 《삼국유사》를 쓰면서 위만조선과 구분하려고 ‘고’를 더해 고조선(古朝鮮)이라고 칭했다.
1392년에 이성계가 나라를 열었다. 다시 조선이다. 대중적으로 제일 익숙한 조선이다.
조선을 우러르는 이가 있고, 싫어하는 이도 있다. 미워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한 개인에게도 좋은 점과 아쉬운 부분이 다 있기 마련이다. 하물며 나라임에랴.
어떤 시각으로 보느냐에 따라 미추가 갈린다. 분명한 것은 조선이 우리나라요, 내 뿌리라는 사실이다.
1945년, 광복을 맞았으나 감격은 잠시였다. 이 땅에 두 개 나라가 서고 말았다.
남쪽에 대한민국, 북쪽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다.
남쪽은 대한제국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를 거쳐 대한민국이 되었다. 북쪽은 ‘조선’을 받아 국호로 삼았다.
그런데 남과 북은 상대방 국호 대신 서로를 북괴, 남괴로 불렀다.
괴(傀)자는 허수아비 또는 꼭두각시라는 뜻이다.
북괴는 소련의 꼭두각시 정권이요, 남괴는 미국의 꼭두각시 정권이라는 의미다.
그래서 기성세대 기억 속에 ‘북괴군’이 들어있다.
서로 얼굴에 침을 뱉는 자학 행위는 2000년쯤에야 끝났다.
북괴는 북한이 되었고, 남괴는 남한이 되었다.
‘남한’과 ‘북한’이라는 호칭은 둘이 같은 민족이라는 의미와 함께 분단국가라는 의미까지 내포한다.
지난해 항저우 아시안게임 때 북한 여자농구팀 감독이 말하길,
북한이라 하지 말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정확히 불러달라고 했다.
일리 있는 요구였다. 대외적으로 정식 국호를 쓰는 게 적절하다.
하지만 일상에서까지 그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호칭은 상대에 대한 존중으로 볼 수 있지만,
왠지 통일을 더 멀리 밀어내는 것 같은 느낌도 들게 한다.
한반도 전체와 부속도서가 대한민국 영토라는 헌법의 현실적 모순성을 더 선명하게 드러낸다.
“조선은 김정일 시대부터 대대적인 개건 사업에 들어가 노후한 시설을 들어내고
거의 새로운 공장을 건설하는 수준의 공사들을 벌였다.”
작금에 한겨레 지면에 실린 기고 글 한 꼭지이다. 북한을 조선으로 표기했다.
“과거에 조선은 농사에 필요한 화학비료를 충분히 생산할 수 있었으나….”
이 부분도 마찬가지이다. 조선은 북한을 가리킨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약칭으로 ‘조선’을 쓴 것 같은데,
목에 걸려 잘 넘어가지 않는다. 이성계가 세운 조선인지, 북한인지, 헷갈릴 수도 있다.
굳이 북한 국가명을 정확히 쓰려고 한다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쓰되,
약칭해서 ‘조선’이라고는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
‘조선’을 아껴 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