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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史

교동도 역사 산책②-대룡시장

궂은 비 내리는 날

그야말로 옛날식 다방에 앉아

도라지 위스키 한 잔에다

짙은 색소폰 소리를 들어보렴

새빨간 립스틱에

나름대로 멋을 부린 마담에게

실없이 던지는 농담 사이로

짙은 색소폰 소릴 들어보렴

이제 와 새삼 이 나이에

실연의 달콤함이야 있겠냐마는

왠지 한 곳이 비어 있는

내 가슴이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

언제 들어도 좋습니다. 가사를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는 노래도 인기를 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금방 식는 것 같아요. 노래의 오랜 생명력은 귀로 들어오는 가사에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아, 내 얘기 같아’ 공감하면서 시 낭송 듣듯 노래를 들으며 또 들으며 나이를 쌓아갑니다. 저도 옛날에 읍내 별다방에서, 성다방에서, 아가씨에게 실없이 농담 던지던 때가 있었습니다.

최백호는 이 노래 만든 사연을 이렇게 밝혔답니다. “나이 마흔이 넘어서 조금씩 세상의 중심에서 밀려나는 느낌이랄까요. 그런 중년들의 처지를 노래로 만들고 싶었어요.”

대룡시장에 다방이 있습니다. 그야말로 옛날식 다방입니다. 도라지 위스키는 당연히 없고요, 계란 노른자랑 잣을 띄운 쌍화차가 대표 마실거리랍니다. 어슬렁어슬렁 여기저기 기웃해봅니다. 도회의 청년에게는 낯설어 신선한, 중장년에게는 반가운, 50년 전쯤의 시골 시장. 젊은이는 추억을 만들러 오고 중장년은 그때를 추억하러 옵니다. 요거 저거 주전부리감 파는 곳도 많습니다.

예전의 대룡시장 철물점
철물점 자리에 들어선 대룡철물 카페

 

다만, 자꾸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남습니다. 옛 모습이 사라집니다. 철물점이 커피집이 되는 식으로 말입니다. 너무 많이 바뀌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대룡시장 가면 시장 뒷골목으로 갑니다. 곳곳에 벽화가 있습니다. 아, 그림이 따듯해서 좋아요. 그림들 하나하나 보고 나면 제가 쬐끔 착해지는 기분입니다.

대룡시장 벽화 거리

 

대룡시장은 6·25전쟁 때 북쪽에서 피난 온 이들이 한 곳 두 곳 점포를 열면서 형성된 공간입니다. 처음에는 죄다 먹는장사였대요. 잡화상 하나 없었다고 합니다. 연백에서 피난 나온 어르신께 왜 먹는장사뿐이었냐고 여쭈어봤습니다.

“배고픈 게 제일 아니에요. 먹어야 살잖아요. 피난 나온 사람이 많으니까, 먹는장사밖에 없어. 뭘 하냐면, 국수 삶아 팔고, 떡국 해서 팔고. 그렇게 잘 될 수가 없어. 말도 못 하게 잘 팔려.”

가래떡 빼는 기계도 없는데 어떻게 떡국을? 곡식 가루를 반죽해서 약간 굳은 뒤에 손으로 비벼가며 길쭉하게 떡가래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어떻게 그렇게 잘 아세요?” 그랬더니 대답하시길, “우리 어머니가 여기서 먹는장사하셨어.”

 

강화문화원, 《江華文化》 제16호,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