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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史

용흥궁의 주인은 누구인가

원래 이번 호에 강화의 지명에 관한 글을 쓸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신문을 읽다가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우선, 용흥궁을 다루기로 마음먹게 된 기사를 발췌합니다. '친일파 이해승 후손' 힐튼호텔 회장 땅 환수소송, 정부가 졌다라는 제목의 중앙일보(2023.10.06. 정시내 기자) 기사입니다.

 

친일파 이해승의 후손이 소유한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땅을 국고에 환수하려 정부가 소송을 냈으나 대법원에서 패소가 확정됐다. 6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정부가 이해승의 손자인 이우영 그랜드힐튼호텔 회장을 상대로 낸 소유권이전등기 소송 상고심에서 원심의 원고패소 판결을 지난달 21일 확정했다. … 정부는 과거 이해승의 소유였다가 이 회장의 소유가 된 홍은동 임야 2만7905㎡를 환수하려 2021년 2월 소유권이전등기를 청구하는 소송을 했다….

 

시도유형문화재 용흥궁(龍興宮)강화도령이원범이 철종으로 즉위하기 전에 귀양살이하던 집입니다. 누추한 초가였는데, 1853(철종 4)에 강화유수 정기세가 기와집으로 새로 지었습니다. 50년쯤 지나서 이재순이 용흥궁을 중건(重建)합니다. 중건한 해가 1900년입니다.

 

용흥궁 안채

 

용흥궁에 잠저 비각이 있습니다. 자그마한 비석 앞면에 哲宗朝潛邸舊基’(철종조잠저구기)라고 새겼습니다. 철종의 잠저가 있던 옛터라는 뜻이지요. 즉위하기 전 임금이 살던 집을 잠저라고 합니다.

잠저의 잠()잠수하다할 때의 입니다. 물에 잠기다, 숨어 있다, 이런 뜻으로 쓰입니다. ()는 집이라는 뜻이고요. 잠저잠룡과 관계있습니다. 잠룡(潛龍)은 아직 하늘에 오르지 않고 물속에 숨어 있는 용이라는 뜻입니다. 즉위 전의 임금이라는 의미를 내포합니다. 지금도 언론에서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이 있는, 주목되는 사람을 잠룡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러니까 잠저란, ‘잠룡의 저정도의 뜻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사실, 용흥궁은 철종의 잠저라기 보다 적거(謫居, 귀양살이)하던 집이라고 하는 게 실제에 가깝습니다. 흔히 쓰는 말로 적거지가 되는 것이죠. 철종 즉위 후, 그의 집안이 죄인 집안이 아니라는 걸 강조해야 했기에 당대부터 용흥궁을 잠저라고 표기했습니다.

비석 뒷면에는 大韓光武四年庚子九月 日重建’(대한 광무 4년 경자 9월 일 중건)이라고 새겼습니다. 광무 4년 경자년이 바로 1900년입니다. 그런데요, 속수증보강도지(1932)에는 대한제국 때인 계묘년(1903)에 이재순이 용흥궁을 중건했다고 나옵니다. 비문과 3년 차이가 나는 이유는 잘 모르겠습니다.

 

용흥궁 잠저 비각

 

용흥궁을 중건한 이재순은 철종의 형인 영평군 이경응의 양자입니다. 철종 집안의 대를 영평군 이경응의 후손들이 잇게 되는데요, 계속 양자가 계승합니다. 물론 재산도 물려받았습니다. 이경응의 양자 이재순, 이재순의 양자 이한용, 이한용의 양자 이해승(1890~?)입니다.

위 기사에, 나라에서 환수하려던 땅이 홍은동에 있다고 했지요. 철종의 생모인 용성부대부인의 묘가 경기도 포천에 있습니다. 원래 있던 서울 홍은동에서 이장한 것입니다. 홍은동 묘역이 상당히 넓었는데 그게 이해승 후손에게 상속된 것입니다.

1910, 일제는 대한제국이 그들의 식민지가 되는 데 공을 세운 조선인 수십 명의 등급을 나눠서 후작, 백작, 자작, 남작 이렇게 귀족 작위를 주었습니다. 21살 이해승은 제일 높은 후작이 되었습니다. ‘상금168천엔 받았어요. 지금 가치로 수십억 원에 해당하는 액수라고 합니다. 일제강점기에 열심히 친일 활동을 하며 일제의 특혜를 받아 돈 벌어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왕가를 이은 사람이 대표적인 친일파가 된 것입니다.

 

철종 생모, 용성부대부인 묘(경기 포천)

 

광복 이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가 설치되면서 친일파에 대한 심판의 기회가 마련됩니다. 19492월 이해승도 반민특위 조사를 받고 갇혔습니다. 그런데 반민특위가 강제 해체되면서 모든 친일행위자가 풀려납니다. 이해승도 풀려났습니다. 죄를 지으면 벌을 받는 것이 상식인데, 그 시대, 전혀 상식적이지 않았습니다.

1950, 6·25 전쟁이 터집니다. 이때 이해승이 납북되었습니다. 장남이 일찍 사망해서 이해승의 엄청난 재산은 손자 이우영(1939)에게 상속됐습니다. 위 기사에 나온 이름, ‘이우영은 홍은동에 호텔을 짓는 등 사업을 벌여 재산을 키웠습니다.

2005년에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설치되고 2006년에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가 출범하면서 친일파 재산에 대한 국가 환수가 추진됩니다. 이해승 집안의 재산도 환수 대상입니다. 이에 불복한 이해승의 후손이 소송을 걸었고 정부가 거듭 패소했습니다. 이번에도 대법원에서 친일파 이해승 후손에게 승리를 안겼습니다.

그러면, 대법원이 이해승의 손자 이우영의 손을 들어준 이유는 무엇일까요? 저는 법을 모릅니다. 그냥 신문에 보도된 내용을 그대로 옮깁니다.

 

이해승은 이 땅을 포함한 임야를 1917년 처음 취득했다. 이후 1957년 손자인 이 회장에게 소유권이 넘어갔다. 근저당권이 설정돼 있던 이 땅은 1966년 경매에 넘겨져 제일은행의 소유로 바뀌었다가 이듬해 이 회장이 땅을 다시 사들였다.

친일재산귀속법에 따라 친일재산은 취득·증여한 때를 기준으로 국가의 소유가 된다. 다만 ‘제3자가 선의로 취득하거나 정당한 대가를 지급하고 취득한 경우’에는 귀속 대상에서 제외된다.

이 회장 측은 재판 과정에서 “제일은행과 별도 매매계약을 체결하고 취득한 것”이라며 땅에 대한 권리가 침해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이 회장의 손을 들었다. 제일은행이 친일재산임을 모르고 경매를 통해 땅을 취득했으므로 ‘정당한 대가를 지급하고 취득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제일은행으로 넘어갔던 땅 소유권을 이우영 회장이 되산 것이 문제가 된 것 같습니다.

정부는 20163월에 친일재산환수소송을 벌이면서 강화도 용흥궁을 가압류했습니다. 그러면 지금, 용흥궁의 소유주는 누구일까요? 건축물대장을 확인해보니 이우영으로 나옵니다. 그렇습니다. 용흥궁의 주인은 친일파 이해승의 손자인 이우영 회장입니다. 다만, 잠저비각 있는 공간은 소유주가 다른 것 같습니다.

수십 년째, 사실상 나랏돈으로 정비하고 관리하는 용흥궁, 제가 낸 세금도 포함됐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집주인이 친일파의 후손이라네요. 법이란 무엇인가, 정의란 무엇인가.

두드러진 친일파는 분명히 죄인입니다. 역사의 죄인입니다. 친일파 후손은 죄인이 아닙니다. 후손이 죄지은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하지만, 친일파 후손은 죄스러운 마음을 요만큼이라도 간직해야 마땅합니다. 염치라는 단어의 의미를 곱씹어야 합니다. 조상의 재산 덕에 호의호식하는 후손이라면 특히 그래야 합니다.

이해승 후손의 재산이 얼마나 되는지, 물려받은 부동산이 어디 어디인지, 저는 관심이 없습니다. 다만, 그분들이, 이제는 용흥궁을 조건 없이 강화군에 양도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강화 주민이 용흥궁의 진정한 주인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용흥궁 화장실

 

제가 용흥궁의 소유주가 누구인지 궁금해진 계기가 이러합니다.

용흥궁 잠저 비각 맞은편에 새로 지은 화장실을 없애야 하지 않겠나, 어느 모임에서 제가 말했습니다. 그러자 어떤 분이 용흥궁이 개인 재산이라서 쉽지 않을 거라고 알려주었습니다. 개인이 누구인지 이제 알았습니다.

지금도 제 생각은 같습니다. 늘 잠겨 있는, 어설픈 모양의 현대식 화장실이 고풍스러운 용흥궁의 분위기를 확 깹니다. 철거하고 전체 건물과 어울리게 조경했으면 좋겠습니다.

 

없앴으면 좋겠다 싶은 것이 또 있습니다. 두 개의 현판입니다. 용흥궁 대문 안으로 들어서면 세로로 내려쓴 사단법인 한국명선차인회현판이 기둥에 걸린 걸 보게 됩니다. 안채 대청마루 옆 기둥에는 용흥궁 전통다도 예절교육관이라고 쓴 현판이 걸렸습니다.

용흥궁에서 이루어지는 다도 예절교육은 아주 좋은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합니다. 강화 주민 입장에서 고마운 일입니다. 건물은 비어 있으면 더 빨리 상합니다. 유익한 프로그램이 운영되면서 사람들이 드나들면 용흥궁 건물에도 생기가 돕니다.

하지만, 현판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용흥궁의 정체성을 흐리게 합니다. 엄연한 문화재인 용흥궁은 기둥 하나까지 소중한 유산입니다. 거기에 못을 박아 현판을 다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여깁니다. 철종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에서도 어긋납니다.

외지에서 온 답사객이 용흥궁 현판들을 보며, “이게 뭐야혀를 차는 모습을 제가 보았습니다. 좀 부끄러웠습니다. 아마도 답사객 상당수가 현판의 부적절성을 인식했을 겁니다. 관리 주체가 어디인지 몰라서 누구에게 부탁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담당자께서 현판 철거 문제를 숙고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강화투데이, 20231015, 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