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에서 약국 하는 친구가 있습니다. 무슨 얘기 끝에, “너희 집 애들은 아프지 않겠다. 아빠가 좋은 약 챙겨 먹일 테니.” 제가 이렇게 말했죠. 그랬더니 약사 친구의 대답이 걸작이더군요. “선생네 애들은 다 1등 하냐?” 그 소리를 들으니 할 말이 없데요.
선생 자식들은 다 공부 잘할까요? 당연히 아니죠. 잘하는 애도 있고, 못하는 애도 많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많은 분이 ‘그래도 선생네 애들은 뭐가 달라도 다르겠지.’ 이렇게 생각합니다. 자신이 교사이니까, 집에서도 제 자식을 잘 가르칠 거라고 믿는 겁니다. 물론, 자식 사랑이 각별한 교사는 퇴근 후 아이를 앉혀놓고 공부 지도를 할 겁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교사는 그렇게 하지 못해요.
교사가 말하는 직업 아닙니까. 온종일 학교에서 수업하고 일하고 퇴근해 집에 오면 정말 지치거든요. 집에선 한마디 말도 하기 싫을 때가 많아요. 그냥 입 다물고 조용히 쉬고 싶어요. 집에서까지 자식 놈 앉혀놓고 공부시킬 맘먹는 거, 쉽지 않아요. 내 자식 잘 키우겠다고 직장 생활하는 건데 정작 자식 놈 공부에 신경 쓰지 않는 게 모순 같지만, 현실이 그렇습니다.
언젠가 제 자식 놈이 뭘 물어보더라고요. 제가 시원하게 대답해주었습니다.
“엄마한테 물어봐라.”
세상에, 이런 나쁜 아빠가 또 있을까? 예, 아마, 많을 겁니다. 그런데 오늘은 특별히 큰맘 먹고 애 공부시켰습니다. 내일도 그럴 생각입니다. 무슨 공부냐고요? 국사죠. 제가 그것밖에 더 압니까.
큰놈이 학교에서 시험을 봤습니다. 다른 과목은 그런대로 괜찮은데 한 과목 점수는 엉망이더군요. 그 엉망인 과목이 바로 국사였습니다. 아비가 고등학교 국사선생인데 자식놈이 제일 못하는 과목이 국사라니 웃기지 않습니까? 우리 애 담임선생님 보기 창피해서 오늘 ‘특강’을 한 것이랍니다.
그럼, ‘선생네 애들’은 제 엄마나 아빠가 교사인 걸 좋아할까요, 싫어할까요?
애들이 어릴 땐 좋아하는 것 같더라고요. 그런데 애들이 좀 크면 싫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부모의 직업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이지요.
저부터도 애한테 “엄마, 아빠가 선생님인데 그렇게 행동하면 되겠어?”라는 잔소리를 많이 합니다. “동네 어른들께 인사 잘해. 선생 자식이 예의 없다고 흉봐 인마.” 이런 소리도 해요. “아빠 얼굴에 똥칠할 일 있냐?” 제 체면을 위해서 아이들을 들볶는 셈인데, 반성할 일입니다.
선생네 아이들은 자라면서 어딘지 모르게 움츠러드는 모습을 보이는 경향이 많습니다. 시원시원한 모습이 부족해 보이기도 합니다. 부모들이 어릴 때부터 선생 자식임을 강조하면서 아이의 말과 행동을 제약했기 때문에 생긴 부작용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아비는 아비고, 자식은 자식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되새겨봅니다.
《가슴으로 크는 아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