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常 66

고려궁지 은행나무에 내린 봄

간밤에 비가 왔다가 갔습니다. 봄비입니다.흠뻑 적셔주지는 않았습니다. 그래도 꽤 촉촉합니다. 덕분에 신록이 제 빛을 찾았습니다. 집에서 바라본 남산이 곱습니다. 고려궁지 은행나무도 제대로 봄입니다.신록꽃을 피웠습니다.      고려궁지 은행나무당신 찾아 나섰다가 엇갈릴까봐꼼짝 말고 있으라던 말씀 생각나 한 발짝 움직임 없이 이 자리에 700년당신 보려 늘어난 목 지탱하려고 땅 밑으로 발가락만 키웠습니다당신 몸 흙 속에서 느껴볼www.ganghwado.com

❚ 常 2024.04.24

노모에게 평생 처음 들은 말

“엄마, 얼른 말해봐.” “아이, 얘가 왜 이래.” 진심으로 고맙다. 요양원 복지사 선생님이 내 어머니를 ‘엄마’라고 부른다. ‘어르신’도 아니고 ‘어머니’도 아닌 엄마! 어머니는 복지사를 ‘얘’라고 칭했다. 마음 열고 정을 주고 있다는 의미다. 어머니를 요양원에 모신지도 어느덧 2년이다. 아니다. 어머니를 요양원에서 사시게 한지도 어느덧 2년이다. 차마 모셨다는 말을 못 하겠다. 보행기에 의존해서 집안에서만 몇 걸음 겨우 걷던 어머니가 어느 날 낙상하였고, 어렵게 이뤄진 수술의 보람도 없이, 누워서만 지내야 하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어쩔 수 없다, 어쩔 수 없다, 내가 나를 합리화하며 어머니 거처를 요양원으로 옮겼다. 아들 편하게 해주려는 어머니는, 죽음보다 더 싫다 하시던 요양원으로 가셨다. 어머니의..

❚ 常 2024.04.12

痛으로 通한 '오월의 청춘'

웨이브에서 ‘오월의 청춘’을 봤다. 2021년에 KBS2에서 방영한 12부작 드라마다. 영화 ‘파묘’에서 무당 윤봉길 역을 해낸 이도현, 영화 ‘밀수’에서 다방 색시 고옥분 역을 맡은 고민시 두 남녀가 주인공이다. 오월의 청춘, 제목만 싱그럽다. 푸르른 오월이 아니라 1980년 광주의 오월이기 때문이다. 하여, 황희태(이도현 분)와 김명희(고민시 분)의 사랑은 운명적으로 아프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김광석이 설파했지만 희태와 명희는 너무 아픈 사랑도, 사랑임을 보여준다. 드라마는 아울러 묻는다. 아부지란 어떤 존재인가 가족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1980년 5월은 끝났는가. ‘아이고, 뭔 드라마가 이러냐.’ 보면서 점점 마음이 지친다. 힘들다. 애잔한 눈빛으로 TV 화면 속 인물들을 바라..

❚ 常 2024.04.07

강화산성 북문 구간 보수공사, 송학골 빨래터

문밖을 나서니 봄을 알겠다. 모처럼 북산 쪽으로 갔다. 4월 1일부터 4월 10일까지 벚꽃이 핀다고 차량 통제 알리는 현수막이 걸렸는데 오늘 4월 2일, 벚꽃은 영, 필 마음이 없다. 개나리만 노랗게 웃고 있었다. 어디보자, 강화산성 북문 옆 성벽 보수공사, 마무리됐나. 원래 이런 모습이었다. 그런데 작년 9월에 찍은 사진은 이런 모습이다. 성벽 붕괴 위험이 커서 선제적으로 해체해서 다시 쌓는 거다. 성벽 일부 해체하면서 그 속에서 나온 돌들이 이렇게나 많다. 새삼, 축성 당시 사람들의 고생을 보았다. 오늘 모습은 이러하다. 체성 부분은 마무리가 되었고, 여장은 아직 쌓지 않은 상태다. 작년 ‘강화산성 보수정비공사’ 안내판에는 공사 기간을 ‘2023.7.28.~2023.10.26.’이라고 적었는데 지연되..

❚ 常 2024.04.02

파묘, 무속, 김금화

안 볼 생각이었다. 어둡고 음습한 분위기, 공포물, 이런 부류의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TV에서 공짜로 틀어주는 것도 안 보는데 내 돈 들여, 내 시간 들여 극장까지 가서 볼 일이 없다. 최민식, 유해진, 이도현이 끌리기는 했다. 김고은은 끌리지 않았다. 나는 그의 연기를 반신반의했다. 그런데 봤다. 파묘. 신문마다, 인터넷마다 연일 파묘를 말하니, 슬금슬금 관심이 일었다. 꼬박꼬박 오컬트 영화라고들 하는데 뜻도 몰랐다. 찾아보니 오컬트(occult)는 “과학적으로 해명할 수 없는 신비적ㆍ초자연적 현상. 또는 그런 현상을 일으키는 기술”이라는 뜻이었다. ‘비과학’이 아니고 ‘초과학’이다. 900만을 찍었을 때, 나는 강화 작은영화관에 앉아 있었다. 이제 천만 영화가 된 파묘, 아주 볼만했다. 뭐, 무섭..

❚ 常 2024.03.30

술 한잔

술 한잔 정호승 인생은 나에게 술 한잔 사주지 않았다 겨울밤 막다른 골목 끝 포장마차에서 빈 호주머니를 털털 털어 나는 몇 번이나 인생에게 술을 사주었으나 인생은 나를 위해 단 한번도 술 한잔 사주지 않았다 눈이 내리는 날에도 돌연꽃 소리없이 피었다 지는 날에도 어제, 복지관 강의를 이 시로 열었다. 역사 강의에 시라니. 뭐 어떠랴, 인생이 곧 역사이거늘. 수강생 어른들 저마다 깊은 표정으로 ppt 화면을 응시했다. 인생은 나에게 술을 사주었나? …… 가수 안치환이 이 시를 노래했다. 함께 들었다. 언젠가 정호승 시인께서 이 시 쓴 것을 후회하는 듯한 말씀은 하신 적이 있다. 후회하실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전혀.

❚ 常 2024.03.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