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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가간다는 말의 숨은 의미는

고려시대에 이런 일이 있었다. 아마도 아버지가 유산 상속을 하지 않고 돌아가신 모양이다. 자식들이 모여서 아버지가 남긴 재산을 나누는데, 문제는 노비였다. 노비도 재산으로 취급되던 시대다. 건강한 노비, 병약한 노비, 젊은 노비, 늙은 노비. 공평하게 나누기가 어렵다. 누군들 병약하고 나이 많은 노비를 택하고 싶겠는가. 아들, 딸들이 머리를 맞대고 상의했다. 드디어 방법을 찾았다. 어떤 방법?제비뽑기였다. 자식들은 제비뽑기로 노비들을 분배했다. 딸도 노비를 받았다고? 그렇다. 고려시대에는 유산 상속에 딸, 아들 차별이 없었다(이 과정에서 노비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지는 고통을 겪기도 했을 것이다). 아버지 제사도 아들, 딸이 같이 모셨다. 만약 아들 없이 딸만 있다면? 당연히 딸들이 제사를 지냈다. “장가..

❚ 史 2024.04.26

고려궁지 은행나무에 내린 봄

간밤에 비가 왔다가 갔습니다. 봄비입니다.흠뻑 적셔주지는 않았습니다. 그래도 꽤 촉촉합니다. 덕분에 신록이 제 빛을 찾았습니다. 집에서 바라본 남산이 곱습니다. 고려궁지 은행나무도 제대로 봄입니다.신록꽃을 피웠습니다.      고려궁지 은행나무당신 찾아 나섰다가 엇갈릴까봐꼼짝 말고 있으라던 말씀 생각나 한 발짝 움직임 없이 이 자리에 700년당신 보려 늘어난 목 지탱하려고 땅 밑으로 발가락만 키웠습니다당신 몸 흙 속에서 느껴볼www.ganghwado.com

❚ 常 2024.04.24

그해 봄, 어느 중년 교사의 자화상

인터넷을 뒤지다가 이 글을 발견했다. 아주 오래전에, 쓴 것이다. 〈행복한교육〉이라는 잡지에 실렸다. 그런데 그런 잡지에 글을 보낸 기억이 없다. 알고 보니, 이었는데, 그게 〈행복한교육〉으로 이름이 바뀐 거였다. 잡지에 실린 글의 제목은 "너 그렇게 살면 안 돼"였다. 아무튼, 다시 읽어보며 그때의 나를 떠올려봤다. 점심때 메일을 열었다. 꽤 많이 오긴 했는데, 한 통 빼고는 모두 스팸이다. 그 한 통은 김혜정이라는 여인이 보낸 ‘너 그렇게 살면 안되.’라는 제목의 메일이었다. 김혜정? 김혜정? 어디서 들어본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다. 제목은 또 뭔가. 맞춤법도 안 맞는, ‘너 그렇게 살면 안되.’라니. 일단 열어봤다. 허, 이런…. 돈 싸게 빌려준다는 스팸이다. 아, 혜정이 너마저도…. 그런데, 제..

❚ 敎 2024.04.20

강화 역사와 강화문학관

다시, 봄입니다 꽃이 피었다고 봄이 아닙니다. 저에게 봄날은 내복 벗은 날, 비로소 시작됩니다. 이제 벗었으니 진짜 봄입니다. 봄맞이 관광객이 강화로 많이들 들어옵니다. 그래서 휴일이면 교통 체증이 심해집니다. 어디 좀 가려면 차가 막혀 짜증이 나기도 합니다. 그럼, 운전대 잡고 혼잣말하게 되죠. “뭘 볼 게 있다고 이렇게들 내려오나.” 우리 눈엔 볼 게 없을 수 있습니다. 너무 익숙한 일상의 환경이라서 그렇습니다. 그런데 외지에서 강화를 찾는 이들에겐 산, 바다, 갯벌이 다 멋진 볼거리입니다. 설사 볼거리가 없다 해도 여전히 강화는 매력적인 여행지입니다. 서울도 아니고, 김포 장기동 사는 친구가 그러더군요. “강화대교 건너는 순간 코가 뻥 뚫려.” 진짜 그러냐, 기분에 그런 거 아니냐? 물어봤더니 진짜..

❚ 史 2024.04.15

노모에게 평생 처음 들은 말

“엄마, 얼른 말해봐.” “아이, 얘가 왜 이래.” 진심으로 고맙다. 요양원 복지사 선생님이 내 어머니를 ‘엄마’라고 부른다. ‘어르신’도 아니고 ‘어머니’도 아닌 엄마! 어머니는 복지사를 ‘얘’라고 칭했다. 마음 열고 정을 주고 있다는 의미다. 어머니를 요양원에 모신지도 어느덧 2년이다. 아니다. 어머니를 요양원에서 사시게 한지도 어느덧 2년이다. 차마 모셨다는 말을 못 하겠다. 보행기에 의존해서 집안에서만 몇 걸음 겨우 걷던 어머니가 어느 날 낙상하였고, 어렵게 이뤄진 수술의 보람도 없이, 누워서만 지내야 하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어쩔 수 없다, 어쩔 수 없다, 내가 나를 합리화하며 어머니 거처를 요양원으로 옮겼다. 아들 편하게 해주려는 어머니는, 죽음보다 더 싫다 하시던 요양원으로 가셨다. 어머니의..

❚ 常 2024.04.12

痛으로 通한 '오월의 청춘'

웨이브에서 ‘오월의 청춘’을 봤다. 2021년에 KBS2에서 방영한 12부작 드라마다. 영화 ‘파묘’에서 무당 윤봉길 역을 해낸 이도현, 영화 ‘밀수’에서 다방 색시 고옥분 역을 맡은 고민시 두 남녀가 주인공이다. 오월의 청춘, 제목만 싱그럽다. 푸르른 오월이 아니라 1980년 광주의 오월이기 때문이다. 하여, 황희태(이도현 분)와 김명희(고민시 분)의 사랑은 운명적으로 아프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김광석이 설파했지만 희태와 명희는 너무 아픈 사랑도, 사랑임을 보여준다. 드라마는 아울러 묻는다. 아부지란 어떤 존재인가 가족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1980년 5월은 끝났는가. ‘아이고, 뭔 드라마가 이러냐.’ 보면서 점점 마음이 지친다. 힘들다. 애잔한 눈빛으로 TV 화면 속 인물들을 바라..

❚ 常 2024.04.07

강화산성 북문 구간 보수공사, 송학골 빨래터

문밖을 나서니 봄을 알겠다. 모처럼 북산 쪽으로 갔다. 4월 1일부터 4월 10일까지 벚꽃이 핀다고 차량 통제 알리는 현수막이 걸렸는데 오늘 4월 2일, 벚꽃은 영, 필 마음이 없다. 개나리만 노랗게 웃고 있었다. 어디보자, 강화산성 북문 옆 성벽 보수공사, 마무리됐나. 원래 이런 모습이었다. 그런데 작년 9월에 찍은 사진은 이런 모습이다. 성벽 붕괴 위험이 커서 선제적으로 해체해서 다시 쌓는 거다. 성벽 일부 해체하면서 그 속에서 나온 돌들이 이렇게나 많다. 새삼, 축성 당시 사람들의 고생을 보았다. 오늘 모습은 이러하다. 체성 부분은 마무리가 되었고, 여장은 아직 쌓지 않은 상태다. 작년 ‘강화산성 보수정비공사’ 안내판에는 공사 기간을 ‘2023.7.28.~2023.10.26.’이라고 적었는데 지연되..

❚ 常 2024.04.02

[스크랩] ‘학자 군주’ 노무현

노무현 대통령 시기에 청와대에서 일한 이정우의 〈참여정부 천일야화〉가 한겨레에 연재되고 있다. 60화 에필로그(2024.04.02.)의 한 대목을 옮긴다. 캐리커처는 매일신문(박상철 일러스트레이터)에서 옮겨왔다. 장례식 날 나는 한겨레신문에 추도문 ‘학자 군주 노무현을 그리며’를 썼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익보다 정의를 추구했다. 맹자가 양나라 혜왕을 찾아가자 혜왕이 물었다. “선생께서 불원천리 찾아오셨으니 우리나라에 큰 이익을 주시겠지요?” 맹자가 답했다. “왕께서는 하필 이익을 말씀하십니까? 오직 인의가 있을 뿐입니다(王何必曰利 亦有仁義而已矣).” 그렇다. 노무현은 평생 이익 대신 정의를, 약자에 대한 배려를 앞세웠다. 늘 손해 보고 지는 길을 갔다. 노무현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말실수와 학벌을 든다. ..

❚ 史 2024.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