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맛날, 축축한 열기에 절로 땀이 흘렀다. 작업복에 안전모까지 갖춰 쓴 사내 몇이 응급조치를 막 끝내고 있었다. 무너진 돈대를 덮은 방수포가 펄럭이며 소리를 냈다. 마치 무언가 아직 하지 못한 말이 있는 것처럼.
며칠 전 폭우로 계룡돈대가 무너졌다. 〈강화뉴스〉를 통해 소식을 들었지만 직접 보기 전까지는 실감이 나지 않았다. 현장을 본 순간, “아~이고” 깊은 탄식이 저 아래서부터 터져 나왔다.


돈대 북쪽, 그러니까 별립산 방향으로 3분의 2쯤 무너져내렸다. ‘하필이면, 북벽이야.’ 아쉬워하다가, ‘아니다, 북쪽일 수밖에 없겠구나’ 싶었다. 계룡돈대는 근래에 복원된 곳이다. 유일하게 북쪽 벽만이 옛 모습 그대로였다. 우묵하게 팬 지반 위에 돌을 쌓고 또 쌓아 평평하게 다진 승군들, 그들의 땀내가 스며있던 오래된 북벽이었다.
“내 잘못이 아니다.”
“내 잘못이 아니다.”
부질없이 되뇌었다. 마치 나 때문에 허물어진 것만 같아서였다. 그동안 나는 계룡돈대를 칭송하면서도 열심히 헐뜯었다. 흉봤다. 너무 ‘현대적’으로 복원해서 옛맛을 느끼기 어렵다고 투덜댔다. 강의할 때도 그랬고, 글로 쓸 때도 그랬다.
아, 흉볼 게 아니었다.
계룡돈대는 1679년(숙종 5)에 승군이 쌓기 시작해 어영군이 완성한 48개 돈대 가운데 하나다. 바다 건너 석모도가 보이는 전망이 탁월하고, 축조 과정을 알려주는 명문(銘文)까지 남아 있어서 강화 돈대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돈대로 꼽힌다.
새삼 계산기를 두드려보니 지금 나이가 무려 348세다. 튼튼하게 지은 아파트도 30~40년 지나면 헐고 다시 짓는 세상이다. 그 열 배 세월을 버티고 견디며 강화를 지켜낸 돈대다. 2026년 현재, 초소로서 실질적인 역할은 끝냈으나, 정신적 초소로서 여전히 기능하고 있다.
348세! 사실, 붕괴하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런데 나는 지금까지 계룡돈대가 무너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부모님이 언제까지나 그 자리에 계실 줄로만 알았던 어린 적 생각과 유사한 마음이었던 것 같다. 무너진 현장에 서서 허탈함을 곱씹다가 차라리 눈을 돌려 물 들어오는 바다를 바라보는 것이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불가항력일 수도 있다. 붕괴 자체가 자연스러운 이치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사람이 정성을 더하면 어느 정도의 예방은 가능하다.
많은 이들이 돈대의 가치를 널리 알리는 방안을 고민해온 것으로 안다. 이제는 그 위에 따뜻하게 보살피는 노력이 더해져야 하지 않을까. 계룡돈대가 무너지고 나서야, 지금껏 소홀히 여겼던 그 보이지 않는 일들이 보이게 되었다.
그동안 나는 ‘사무적’으로만 돈대를 보아왔다. 반성할 대목이다. 포좌가 몇 개인가, 옛 여장의 흔적이 남았는가, 석누조와 이방이 있는가. 공부에 필요한 것만 챙겨 보아왔다. 아픈 곳은 없는지, 불편한 데는 없는지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다.
이제는 따뜻한 눈으로 돌아보려 한다. 늙은 돌에 귀를 바짝 붙이고 혹시라도 고통의 신음이 들리지 않는지 가만히 들어볼 것이다.
자발적인 돈대지기라고 할까?
당신도 그랬으면 좋겠다.
〈강화뉴스〉, 2026.07.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