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때도, 조선 들어서도 마니산 참성단에서 하늘 제사를 올렸습니다.
임금이 고위 관료 중에서 제사 책임자를 선정해 강화로 보냅니다. 참성단 제사의 책임자를 보통 행향사(行香使)라고 불렀어요. 행향사로 강화에 왔던 인물 가운데 이방원도 있습니다. 물론 조선 태종으로 즉위하기 전, 고려 조정에서 벼슬할 때였습니다.
행향사가 와서 묵으며 몸과 마음을 정갈하게 할 장소가 필요합니다. 제사 음식 준비도 해야 하고요. 그곳이 바로 마니산 북쪽 기슭, 화도면 문산리에 있던 재실, 천재궁입니다. 지금은 터만 남았으나, 옛날에는 제관들의 숙소와 제기 보관소를 비롯해 여러 건물이 있었을 겁니다. 목은 이색(1328~1396)이 지은 시에 따르면 앙산정(仰山亭)이라는 정자도 있었습니다.
천재궁 가는 길 들머리에 금표도 있어요. 신성한 구역이니 출입을 금한다는 의미였을 겁니다. 갑곶돈대에 있는 금표는 번듯한 비석이지만, 여기는 너럭바위에 ‘禁標’(금표)라고 크게 새기고 작은 글씨로 ‘甲子 八月’이라고 새겼습니다.
어느 해 갑자년에 새긴 것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연산군 때가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정해봅니다. 1504년(연산군 10) 갑자년에 대신들이 연산군에게 마니산 재궁 짓는 일은 그만두라고 청합니다.
《연산군일기》에 연산군의 대답이 실렸어요. “마니산에 짓는 집은 성신(星辰)과 신에게 제사지내는 곳이니, 그칠 수 없다.” 연산군 때 천재궁을 다시 지은 것 같습니다. 이때 금표도 함께 새겼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천재궁은 1987년에 ‘경기도 기념물’로 지정됐습니다. 그때는 강화군이 경기도에 속했었지요. 공식 명칭이 ‘천제암(궁)지’(天祭菴(宮)址)였습니다. 천제암지도 되고 천제궁지도 된다는 의미인 것 같습니다. 천제암궁지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뭔가 자연스럽지 않았습니다.
1995년에 강화군이 인천시에 편입되면서 ‘인천광역시 기념물’이 되었지만, 이름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2021년에 ‘천제암(궁)지’가 ‘강화 참성단 천재궁 터’(江華 塹星壇 天齋宮址)로 변경돼 지금에 이릅니다. 한자 그대로 읽으면 ‘강화 참성단 천재궁지’가 됩니다.
제(祭)? 재(齋)? 궁(宮)? 암(菴)?
이름이 복잡합니다. 옛 사료마다 제각각 다르게 나와서 그렇습니다.
참성단에서 올리던 도교식 하늘 제사를 초재(醮齋)라고 했습니다. 초재가 성리학의 나라 조선에서 초제(醮祭)로도 불리게 됩니다. ‘제(祭)’는 유교적 제사를 의미한다고 해요. 초재를 초제로 호칭하게 된 것은 도교적 의례가 유교적 의례로 변화했음을 암시합니다. 그 결과 천재궁이 천제궁으로도 불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조선후기에 참성단 하늘 제사가 사실상 폐지됩니다. 역할을 다한 천재궁은 사찰로 변합니다. 천재사(天齋寺)로 불리기도 했는데 대개는 천재암(天齋菴)이라고 했습니다. 물론 천제암(天祭菴)이라고도 했고요.
무엇이 맞다, 틀리다, 하기 어렵습니다만, 지금 공식 호칭인 천재궁으로 말하고 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강화역사심문〉제4호(2025.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