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님네들과 식사 자리.
영화 ‘퍼펙트 데이즈’가 화제로 올랐다. 너무 좋아서 두 번 봤다는 친구가 나에게 봤냐고 물었다. 눈만 껌뻑이고 있던 나는 보지 않았다고, 볼 생각 딱히 없다고 대답했다.
일본영화라서 안보겠다고 한 게 아니다. 외국영화라서 안보겠다는 거다. 한글 자막과 화면과 음향에 동시 집중하는 게 나는 어렵다. 그래서 우리 영화를 주로 본다.
친구가 그랬다. 자막 별로 안 나온다고, 대사 별로 없다고. 웬만해선 안 그럴 것 같은 친구가 너무 좋아 두 번이나 봤다니 궁금하지 않은가. 그래서 봤다. 퍼펙트 데이즈.
진짜였다. 주인공은 말이 없다, 거의. 표정과 작은 몸짓으로 말을 대신했다. 그럼에도 그 남자의 삶이 보였고 상당 부분 이해됐다. 60대 중후반쯤으로 보이는 남자 주인공. 그의 이름을 검색하니 야쿠쇼 코지라고 한다. 영화 속에서는 히라야마라는 이름의 독거노인, 아니 독거준(準)노인으로 나오는데 공공 화장실 청소를 하며 산다. 아주 착실하다. 몸이 건강하고 마음도 건강해 보이는 인상 좋은 남자다.
영화는 주인공의 하루 삶을 몇 번이나 반복해서 보여준다. 근데 희한하게 지루하지 않다. 하긴 매일 똑같은 일이 반복되는 일상이라도 매일 똑같은 날은 없지.
내가 시나브로 주인공이 되어 도쿄의 화장실 변기를 닦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을 들게 한다. 동질감을 부르는 것은 그의 행동 속에 내가, 우리네가 지금 하고 있는 것 그리고 과거에 했던 것들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카세트테이프 구멍에 연필을 넣어 감는 장면을 보며 나는 웃었다.
책, 카메라, 음악을 즐기고 나무와 그 나무에 떨어지는 햇살을 좋아하는 주인공과 그의 일상은, 평범하면서도 평범하지 않다. 때로는 구도자 인상을 풍기기도 한다. 외로운 듯, 외롭지 않은 듯, 외로운 듯.
인상적인 장면은 주인공이 처음 만난 남자와 그림자밟기 놀이를 하는 모습이다. 그 남자는 주인공이 마음에 품은 여인의 전남편이다.
그러하다. 주인공은 알게 모르게 한 여인을 연모하고 있었다. “이 나이에 오는 사랑은 / 다 져서 오는 사랑이다 / 뱃속을 꾸르럭거리다 / 목울대도 넘지 못하고 / 목마르게 내려앉는 사랑이다”(박규리)라는 시 한 구절이 연상되는 그런 사랑. 주인공이 슬쩍 날리는 미소 속에 진달래 꽃잎 같은 연한 연정이 흐른다.
비유하자면 영화는 소설일 테다. 그런데 이 영화는 수필 같다. 때로 시 같기도 하다. 잔잔하다. 보는 동안 가랑비에 폭 젖었다. 그 촉촉함이 좋다.